치안, 수준 향상이 시급하다

2015.09.09 20:49 입력 2015.09.09 20:54 수정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지난달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 ‘분석 화학(Analytical Chemistry)’에 실린 ‘미국 과학기술연구원(NIST)’의 논문이 법과학과 과학수사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종전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던 ‘지문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된 것이다. 지방산 등 지문의 구성성분인 ‘생체 분자’들이 지문 융선에서 얼마나 많이 이동했는지를 측정해 최초에 지문이 남겨진 이후 경과된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제시되었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치안, 수준 향상이 시급하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 소유자가 ‘현장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범행 이전이었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범죄수사 현장에서 이 기술이 사용되려면 법과학계의 치열한 검증과 오류율의 확인, 현장과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용화된 장비의 개발까지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설사 미국에서 현장 적용이 가능해진다 해도, 유럽과 일본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되려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하다. 지문, 유전자 감식 등 과학수사 기법의 발견으로부터 프로파일링, 범죄 재구성, 지리적 프로파일링 등 범죄 분석 기법은 물론, 지역사회경찰활동(Community Policing) 및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등 범죄예방 기법에 이르는 ‘치안 과학기술’은 100% 전량 수입, 해외에 의존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는 ‘치안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범죄의 예방과 수사를 보다 효과적, 전문적으로 잘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는 우리 치안현장에서는 늘 고가의 장비를 수입해 놓고도 사용법을 몰라 방치하거나, 우리 체형이나 기후, 사회적 환경에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예도 허다하다.

수많은 우수 과학기술 인재들이 일자리를 못 찾고, 역량 있는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치안 과학기술 수요’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해 ‘남의 일’로 여긴다.

미국의 경우 ‘국립사법연구소(NIJ)’ 및 ‘연방수사국(FBI)’에서 치안 과학기술 개발 수행 및 지원을 주도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내무부와 경찰청장협의회(ACPO) 등이 그 일을 전담한다.

이웃 중국에서도 공안부 과학기술국과 산하 ‘공안연구소’에서 치안 과학기술 연구 및 개발을 담당한다. 그런 가운데 치안을 책임져야 할 국민안전처와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들은 높은 계급을 위한 자리를 늘리고 권력과 권한을 더 얻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치안 일선 현장의 문제 해결에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과 방송에선 초고가의 최첨단 수입 장비와 시스템을 자랑하지만, 정작 세월호와 돌고래호 참사나 포천 여중생, 화성 여대생, 노들길 여성 피살사건이나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등 미제사건 앞에서는 ‘증거 부족’ ‘오리무중’ ‘장기 미제’의 꼬리표를 붙인다.

‘치안 인재’의 문제도 심각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키운 핵심 치안 인재들인 경찰대학 졸업생들은 로스쿨이나 대기업 등 ‘더 나은’ 직장으로 떠나고, 야간이나 휴일 등 시간외 근무수당도 제대로 못 받으며 격무에 내몰리는 일선 경찰관들의 스트레스와 피로도는 위험수위에 도달한 지 오래다. 병역의무의 일환으로 치안업무를 보조하는 의경들은 경찰 간부가 장난으로 쏜 총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충분한 전문 교육훈련과 권한도 없이 경찰 업무의 상당 부분을 실질적으로 떠맡고 있다.

국방 못지않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치안’은 국가 ‘주권’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범죄 피해는 점차 그 규모나 강도가 악화되고 있고, 그로 인한 불안감은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떨어트리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은 여성이나 노약자가 밤거리를 마음 놓고 다녀도 안전한 치안강국’이라는 ‘위험한 과장홍보’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에게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위험을 제대로 알려 각자가 ‘안전한 생활’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으로 치안 과학기술의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및 관리시스템의 정상화를 통해 국가 치안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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