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좀 살립시다

2015.11.04 20:52 입력 2015.11.04 20:58 수정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한국 사람, 특히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참 힘들고 아프다. 굳이 높은 자살률과 실업률과 지니계수, 그리고 낮은 행복지수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린 모두 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아프고, 군에서 잇따르는 사고 때문에 또 아프다. 일본 극우세력의 망발도 묵은 상처를 헤집고 미국과 중국 양강 사이에 낀 약자의 아픔도 서럽다. 철없는 전체주의 북한은 한쪽으로는 핵과 미사일로 불장난을 벌이고 다른 쪽에선 이산가족의 심장을 헤집는 감정 장사를 벌인다. 그런데 정부는 ‘역사전쟁’을 벌이자며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공격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국민 대통합’ ‘국민 행복’을 내세우며 탄생한 현 정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사람 좀 살립시다

가치가 획일화되고 무한경쟁 속에 내몰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다섯 가지 중 하나의 적응 행태를 보인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진로를 따르는 ‘동조형’은 엄친아 엘리트들이다. 반면에, ‘성공’이라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지만, 그 수단은 불법 혹은 비윤리적인 것을 채택하는 ‘반사회적 혁신형’은 범죄자나 비리, 탈법 사범들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성공이라는 목표는 포기하되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의례형’, 보통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서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민이 성실함을 포기하고 아픈 현실에서 도망가버리는 ‘도피형’이 될 때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마약 중독, 온라인 중독, 성 도착 등의 자기파괴형 일탈자가 되거나 자살을 한다. 일부는 획일적 가치를 강요하는 사회 체제에 반기를 들고 반체제나 사회전복, 혁명 등의 금지되는 목표를 세우거나 독특한 목표를 향해 운동을 전개하는 ‘반항형’이 되기도 한다. 극단적 폭력에 의존하는 ‘이슬람국가(IS)’류의 반항형은 재앙이지만, 일제강점에 저항한 독립투사들과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가들은 사회를 발전시킨 긍정적 반항형들이다.

국민 중에서 이들 다섯 유형의 분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사회 체제와 정부의 태도와 노력과 큰 관계가 있다. 특히 ‘성공’을 포기한 채 힘들게 살아가는 ‘의례형’ 서민들이 맞닥뜨리는 생활고와 삶의 의미 상실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치유하고 보듬어줄 것인지가 현대 국가 공통의 최대 고민이다.

그래서 각국은 국민 통합, 복지제도 확충, 빈부격차 축소와 비판적 토론의 활성화를 통한 사회불만 해소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이러한 국가와 사회, 정부의 책무를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느냐에 대한 성적표가 각국의 행복지수, 지니계수, 복지 수준, 사회통합도 등이다. 우리에겐 분단과 북한이라는 장애가 있지만,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경찰 노릇을 해야 하고 영국은 ‘북아일랜드’라는 환부, 독일은 통일 비용, 스페인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바스크와 카탈루냐가 있는 등 각국에도 나름의 장애들이 있기에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은 개발 열풍 속에 도시빈민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켜 반사회적 ‘반항형’으로 만들어왔다. 잘못된 정책으로 농어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반항형’ 투사들로 변모시켰다. 노동현실과 노사 갈등 문제를 힘으로 밀어붙여 이들 중에 반정부 반체제 ‘반항형’ 운동가들이 양성되었다. 광주에서 군대의 총과 칼과 대포로 서민들을 탄압해 한 맺힌 ‘반항형’ 시민들이 무수히 만들어졌다.

이제 모두의 노력으로 지난 상처들을 조금씩 봉합하며 미래를 향한,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동력을 만들어야 할 때다. 케케묵은 이념논쟁이나 역사전쟁을 운운하며, 늘 가해자였던 현 정권이 다시 서민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서민들끼리 다투고 싸우게 해서는 안된다. 이러면 삶의 의욕을 잃는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자살률이 증가하고, 다양한 안전 사고들이 발생한다. 권력자와 가진 자들을 적대시하는 ‘반항형’ 투사들도 늘어난다. 정상적인 다른 국가, 정부들처럼, 국민통합과 복지와 문화 발전에 힘써야 한다. 제발 사람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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