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은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2016.01.19 20:57 입력 2016.01.19 21:08 수정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부모로부터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라는 말을 듣고, 공부를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린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흥미를 좇아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저 말을 듣고 포기했다. 부모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고 싶었고 아이가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부모는 그 말이 아이에게 그렇게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말 한마디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고 한동안 무기력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는 자기가 ‘멘털’이 약하다고, 자존감이 낮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게 비단 그 아이만의 문제일까.

진료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절실하게 깨닫는 건, 그들의 자존감이 낮은 게 그들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청춘직설] 낮은 자존감은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많은 경우, 자존감의 높고 낮음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지위가 불안정해서 그들이 실질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더해 타인으로부터 계속 평가절하를 당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낮춰 보게 되는 게 낮은 자존감 문제의 핵심인 경우가 많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가 종종 있다. 갑 중의 갑이 있다면, 갑 중의 갑 중의 갑도 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의 갑인 동시에 을인 셈이다. 한쪽에서는 떵떵거리며 꼰대질을 하다가도, 다른 쪽에 가면 슬슬 눈치를 보는 게 우리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존감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자존감이 그리 높진 않은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답답하게 행동하는 아이가 눈에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 같은 말을 내뱉게 된다. 타인을 향한 날선 말들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의 반영인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험한 말을 던지는 부모도 자존감이 낮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 역시 비단 그 부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그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것을 호출한다. 정의가 결여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찾았다. 벌써 몇 년 전 얘기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로부터 크게 변화한 것 같지가 않다. 한동안은 ‘힐링’이 유행이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감성적인 단문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안정을 못 찾고 있다. 작년과 올해 서점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미움받을 용기>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정의’를 원하지도, ‘힐링’을 바라지도 않는구나 깨달았다. 그런 건 마치 세상에 존재한 적 없다는 듯, 사람들은 이제 미움을 견딜 ‘용기’를 찾고 있다.

사적인 미움이라면 견디거나 감출 수 있다. 대판 싸우고 털어버릴 수 있는 감정이라면 차라리 낫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미움’의 또 다른 이름은 ‘차별’과 ‘무시’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가 있느냐’는 물음은, ‘차별과 무시가 계속될 때 어떻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다. 그저 일상을 살아갈 뿐인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용기란, 창업을 통해 창조경제에 이바지할 대단한 기백이 아니다.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 같은 말에 허물어지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나갈 정도의 허약하지 않은 ‘멘털’이다.

어쩌면 낮은 자존감은 사회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자존감이 낮은 걸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건 가난은 모두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청년실업, 비혼, 저출산, 이 모두가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자율성의 윤리와 공동체의 윤리가 충돌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자율성의 윤리는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인생을 기획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지향한다. 한편 공동체의 윤리는 가족, 군대, 회사, 국가와 같이 더 큰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여할 것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윤리가 우세했다. 개인이 중시되는 사회가 아니었다. 무리에 녹아들어야 생존에 유리했던 시절, 자존감은 별문제가 안됐다. 앞으로는 어떨까. 중요한 건,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자율과 소속감 모두를 필요로 한다. 생존과 자존이 같이 가야 하는 것처럼, 자존과 공존 역시 함께 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융화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연대’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같은 것이 가능할까. 우리 모두의 자존감을 위해 새로운 사회운영체제의 모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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