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여론의 시대

2016.01.26 20:27 입력 2016.01.26 20:37 수정
정은경 | 문화평론가

장강명의 장편소설 <댓글부대>에서 놀라운 것은 발 빠르게 ‘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이후에 전개될 2세대 댓글 조작 기술, 한층 진화되고 교묘해진 전략전술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청춘직설] 가짜 여론의 시대

가령, 이런 식이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조작, 도용한 아이디로 SNS에서 가짜 댓글 달기 등은 기본이고, 대기업 계열 전자 회사의 백혈병 환자를 고발하는 영화에 대한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임금 체불로 허덕이는 영화산업 노동자를 가상으로 만들어 이이제이식으로 망하게 만든다거나, 진보적 온라인 커뮤니티는 ‘PC’(Pol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를 적극 활용해 게시판을 병림픽(병신올림픽)이 판치는 짜증의 도가니로 만든다. ‘장님은 시각 장애인으로, 성전환 수술은 성확정 수술이라고, 불임은 난임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등이 그 예이다. 또는 폐쇄적인 여초 사이트를 파괴하기 위해 ‘섹스게시판’이나 ‘시월드 게시판’의 비밀글을 일베 사이트로 옮겨 분란을 일으키고, 고의적으로 회원들을 명예훼손 등의 사이버 형사법 위반으로 유인해 고발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십대들을 보수화하기 위해 ‘종북좌빨 때려잡자’라는 거북한 메시지 대신, ‘나는 강하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라는 ‘나강캠페인’을 기획, ‘프리러닝, 남자 패는 법, 옷 브랜드 지우기’와 같은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유포, ‘남 탓하는 진보’를 몰아내는 광범위한 심리선동술을 동원하기도 한다.

허구라고는 하지만, 여론조작 전술이 너무 교묘하고 그럴듯해서 앞으로 실재할 수도 있는 댓글부대가 차용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강남구청 댓글사건’을 떠올리면, 이미 우리는 이러한 조작술로 오염된 온라인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뉴스나 여론이 모두 진짜 객관적이고 순수한 사실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매체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프레임과 의도가 항상 ‘사실’에 우선하는 거푸집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항상 그 프레임 안에서 사유하고, 분노하고, 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프레임은 물론 ‘여론’이라는 사실 콘텐츠까지 가공 제작될 수 있다니. 이 소설에서는 가짜 여론뿐 아니라 실제 가짜 뉴스도 등장한다. ‘엄마가 진보적일수록 아이의 행복수준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엄마가 보수적 가치를 강조할수록 자녀의 성적이 높은 걸로 나타났다’ 등의 가짜 뉴스를 만들어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연구 결과물로 포장, 돈을 주고 인터넷 신문에 게재하는 식이다.

위에서 열거된 신기술은 작가의 창작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역사적으로 축적된 선전선동술의 온라인 버전쯤으로 볼 수 있다. 소설의 9개 소제목 장이 나치의 선전부장 괴벨스의 어록들에서 따왔다는 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에 의하면 이러한 괴벨스의 전략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보수성과 아이 성적의 관계’에 가짜 뉴스가 회자되는 건 대중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고, 셀럽이나 ‘네임드’(인터넷 유명인사)를 고의적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것은 커뮤니티 회원들의 권력의지와 폭력성을, 연출된 ‘진보 평론가와 인문학자의 실체’라는 가짜 동영상이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지질함과 가난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사기란 본질적으로 없다”고 했다. 중국에서 사기 환전을 당한 일을 예를 들어, 더 많은 이익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BBK 실소유주에 관한 진실이든,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든 우리 안에 자리한 무의식적 욕망이 허용하는 목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어떤 사실을 진실로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아무리 굳건한 사실도, 믿고 싶지 않은 마음 앞에서는 한낱 쓸모없는 허위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오래전 술자리에서 K작가가 들려준 말이다. “세상은 말이야,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인간과 정의롭고 민주적인 인간으로 나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인간은 모두 근본적으로 탐욕적이고 이기적인데, 성공한 인간과 실패한 인간들이 있을 뿐이야.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울지만, 남의 행복에 대해서는 도무지 웃을 수 없는 게 인간이란 말이지.” 찬성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뇌리 속에 남아 더러 나의 동의를 받아내던 말이다. 흔히 모자란 사람이 그렇듯, 사실과 법칙이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으므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덜떨어진 그런 사람들 말이다. 문제는 나를 비롯한 인간의 실체를 인정했을 때, 우리의 그러한 욕망이 영리하게 최소한도의 자기 몫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가짜들에 속는 ‘탐욕’과 ‘폭력’을 내칠 수 있을지, 어떻게 국정원장과 댓글부대 담당 검사의 운명에 개입한, 승리한 자의 ‘진실’에 대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분별심과 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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