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테러방지법 다그치기

2016.03.10 21:08 입력 2016.03.10 21:12 수정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사이버 위협을 조기에 식별하고 조치할 수 있는 정부와 민간의 정보공유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것을 뒷받침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이버테러방지법을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고 하고 있는데 10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주목해야 할 몇 개의 열쇠말들이 있다. ‘정보공유’ ‘전문가’ ‘이구동성’ ‘10년째’이다.

[시대의 창]사이버테러방지법 다그치기

우선 ‘10년째’부터 보자. 국회가 10년 동안이나 일처리를 안 하고 있다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단어이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이와 비슷한 법률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와 여당의 인식도 같아 보인다. 미국의 경우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미국의 관련 법률 중에서 사이버테러방지법과 가장 비슷한 것은 사이버안보정보공유법(이하 정보공유법)이다. 마치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런 법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만 한참 뒤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법이 미국 상원을 통과한 것은 작년 10월27일이다. 아직 법안의 잉크도 안 말랐다.

다음으로 ‘정보공유’를 보자. 미국의 정보공유법은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 인터넷 트래픽 정보의 공유를 허용하는 것이 골자이므로 박 대통령이 언급한 ‘정보공유’에 정확히 해당하는 법이다. 이 법에 반대한 사람들은 이 법을 시행하게 되면 기업은 정보 보호의 책임을 정부에 떠넘겼다고 느껴 정보 보호에 소홀해질 것이며, 무려 7개 부서에 개인정보를 퍼뜨리게 됨으로써 프라이버시 보호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은 9·11테러의 악몽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테러 시도의 표적이 되고 있는 나라이고, 미국의 정보공유법에는 사이버 안보와 무관하면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공유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혀놓았는데도 그렇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우리의 사이버테러방지법은 민간 기업을 포함해 광범위한 기관들이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써있을 뿐, 정보 보호와 관련해서는 “공유하는 정보에 대하여는 사이버 위기관리를 위해 필요한 업무범위에 한해 정당하게 사용 관리해야 한다”는 한 줄이 들어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핏 보면 정보공유법을 놓고 미국의 관련 업계는 둘로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컴퓨터커뮤니케이션산업협회는 이 법안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효과도 없고 정당성도 없으며 필요성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그룹에 속하는 기업들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T-모바일, 야후 등이다. 또 다른 그룹인 소프트웨어연합은 정보공유법을 비롯한 5개의 사이버 안보 관련 법안들의 빠른 처리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냈다. 여기에 속하는 기업들은 애플, IBM, 어도비, 세일스포스, 시만텍, 오러클 등이다. 이 서한은 정보공유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시대에 뒤처진 법률을 업데이트해달라는 요구이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는 정보에 접근하려면 전자커뮤니케이션프라이버시법의 적용을 받는데, 이 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1986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현실과 큰 괴리가 있으니 변화된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를 해달라는 뜻이다. 낡은 법률 때문에 기업활동에 어려움이 있음을 호소하는 철저한 경제논리다. 이 서한에 서명한 애플이 최근 테러범의 아이폰을 잠금해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FBI의 요구를 거절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서한에 서명한 또 다른 기업인 세일스포스의 CEO 마크 베니오프는 트위터에서 “그 서한은 잘못된 것이며 정보공유법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겠다. 나는 정보공유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이버테러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만일 북한이나 어떤 테러 집단이 해킹을 통해 우리의 에너지, 교통, 통신, 금융 같은 인프라를 장악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세계적인 사이버테러 전문가들은 “사이버테러의 위협은 실제로 존재하고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테러의 위협은 종종 언론이나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집단에 의해 과장돼 있다”고 말한다. 만에 하나 일어나면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으므로 이성적이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국민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침해하는 방식의 정치적 폭주는 불신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결국 이러한 이성적이고 철저한 대비를 늦어지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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