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가 필요한 이유

2016.05.17 21:04 입력 2016.05.17 21:05 수정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가 180여년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 진시황만의 공이 아니다. 그보다 120년 전 상앙(商앙)의 내정 개혁을 통해 강력한 나라로 발돋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효공이 상앙의 정책에 매우 만족하면서도 반발을 우려하여 선뜻 시행하지 못하자, 상앙이 말했다. “선각자는 원래 세상의 비난을 받게 마련입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모두가 혜택을 누리게 될 테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상앙이 단행한 개혁의 핵심은, 능력과 실적에 의한 신분 변동, 군사조직과 토지제도의 혁신, 철저한 상벌을 통한 법치의 실현 등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법령을 적용하고 부세를 공평하게 하여 백성에게 신뢰를 주었다. 자발성이 아니라 엄격한 상벌로 강요된 신뢰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그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결국 상앙 덕분에 진나라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송혁기의 책상물림]협치가 필요한 이유

그러나 상앙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는 새로운 법령을 위반한 이들은 물론 법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처형하였고, 이때 만든 정적들에 의해 자신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법치의 성과는 얻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상앙이 말한 개혁이 자신의 선각자적인 식견과 판단을 믿고 따라만 오면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게 해 줄 텐데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는 으름장과 함께 던져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이익이든 통일이든 그 어떤 대단한 것이든 간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협치(協治)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상앙의 시대와는 달리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지금 협치라는 신생어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삼권분립과 의회정치의 기본만 지켜진다면 굳이 언급할 것조차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넘어서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통치 방식을 지향하는 뜻이라면 참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 말이 투표로 드러난 민의를 무시하고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벗어나서 정치세력 간의 협잡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사용된다면, 더구나 협치의 이름 아래 선각자적 오만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모든 독재자는 선각자의 이름으로 나타나곤 했음을 역사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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