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책임질 것인가

2016.05.31 20:41 입력 2016.05.31 20:44 수정

“제 몸만 생각하는 소인들도 집이 있고 저 형편없는 이들도 녹봉이 있거늘, 복 없는 백성들에게 하늘이 화를 내리네. 부자들이야 어떻게든 괜찮지만 외롭고 곤궁한 이들이 애처롭구나.” 음력 4월에 서리가 내림을 근심하여 지은 ‘시경, 정월’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어려운 시대를 한탄하던 시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다. 안정된 생활의 터전도 없고 정기적인 보수도 보장되지 않는 이들. 예로부터 재해와 사고는 유독 그런 이들에게 닥치곤 한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19세 청년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정해진 수칙을 지키지 않은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거나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사고일 뿐이라고 덮어둔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물어야 할 책임이 눈앞에서 증발해 버리는 장면을 또다시 목격하게 되고 말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래 일련의 사건들이 슬픔을 넘어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많은 무고한 희생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래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 이 사회 자체 때문이다.

[송혁기의 책상물림]누가 책임질 것인가

서울시 지하철이 이원화되고 기본적인 안전 관리까지 외주를 주면서 발생하게 된 여러 문제들에는 이런저런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근간에 흐르는 것이 효용성과 편의성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위한 경쟁적 입찰과 하청의 과정에서, 마땅히 누군가 져야 할 ‘책임’ 역시 단계별로 끊기고 업무별로 쪼개져서 이윤의 극대화라는 지상 목표 아래 공중분해되어 어디 가서도 물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와 사고는 아무런 결정권 없이 현장에서 주어진 일에 헌신하던 비정규직 저임금 용역들에게 닥치곤 하는 것이다. 산재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옛 성군 문왕은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을 먼저 챙겼다고 한다. 경제능력이 취약하고 사회관계까지 단절되어 나라의 보호가 꼭 필요한 이들이다. 올바른 정치를 실현한 결과 이들에게까지 복지의 혜택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챙기는 일을 정치의 시작으로 삼았다.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높은 자리에 올라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든 기업이든 결정권이 많은 지위에 이를수록 책임도 커져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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