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소리를 듣고 싶다

2016.09.02 21:31 입력 2016.09.02 21:34 수정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입술을 좁게 오므리고 혀끝으로 입김을 불어서 청아하게 내는 소리, 휘파람이다. 악기를 빌리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혹의 소리다. 다들 시원치 않은데 혼자만 상태와 성과가 두드러질 때 언론이 ‘나 홀로 휘파람’으로 수식하는 것처럼 휘파람은 대체로 ‘룰루랄라’ 즐거움이나 뽐내는 소리로 인식한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방랑의 휘파람’이나 <콰이강의 다리>의 ‘보기대령행진곡’에 등장하는 휘파람 소리는 호쾌하다.

[임진모 칼럼]휘파람 소리를 듣고 싶다

분단을 종식하고 독일이 통일을 맞았을 때 록 밴드 스코르피언스가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으로 그 기대에 찬 환희를 표현했을 때도 휘파람 소리를 동원했다. 우리의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B1A4)가 2014년 발표한 ‘솔로 데이’에 등장하는 휘파람도 즐거움 쪽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솔로족’을 향해 ‘이제는 즐겨야 돼/ 이별을 즐겨야 돼/ 기분 좋은 솔로 솔로 데이’라고 외치면서 청량한 휘파람을 구사한다. 하지만 휘파람이 긍정 정서의 산물만은 아닐 것이다. 상쾌·명랑하기도 하지만 노을 진 가을 녘 들판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는 쓸쓸하고 처량하다.

오늘날의 이문세를 만든 1985년 3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휘파람’은 실연의 통증이다.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네….’ 이제는 전설이 된 밴드 산울림 노래 ‘빨간 풍선’은 휘파람이 희로애락의 정서를 포괄함을 알려준다. ‘휘파람을 불지 마 그건 너무 쓸쓸해…/ 휘파람을 불지 마 그건 너무 정다워…/ 휘파람을 불지 마 기다림이 무서워.’

그러니까 휘파람은 잘됐을 때도 부는 것이지만 안됐을 때도 어울린다. 만약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가 저녁 길에 혼자 휘파람을 분다면 자립을 향한 자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휘파람은 이 점에서 ‘힐링의 사운드’다. 시인 고도원은 “성공하고 신이 났을 때 휘파람은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이 내 안을 휘감고 들어와 시름을 날려버립니다”라고 휘파람이 갖는 위안의 가치를 정리한다.

1976년인가 아주 오래전 일로 꽤나 헷갈렸던 게 기억난다. 당대를 주름잡던 가수 정미조의 노래 ‘휘파람을 부세요’가 ‘불꽃’ 등과 함께 금지곡 처분을 받은 것이다. 그 시절 억울하게 당한 곡이 한두 곡이 아니긴 했지만 ‘휘파람을 부세요’의 경우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차분한 곡조, 얌전한 가사였다.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외롭다고 느끼실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교실의 친구들은 나름 그 이유를 분석하느라 설왕설래를 거듭했다. “휘파람 소리가 불길해서 그런 것 아닐까” “휘파람을 부는 입모양 봐봐. 유신정부 눈에 건방지게 보일 수 있어!” “아냐 이장희가 쓴 곡이라 그랬을 거야”. 최근 컴백했지만 정미조가 잘나가던 시절에 음악과 작별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데는 실제로 금지곡 판정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2006년 텔레비전에 출연해 “그때 특별한 사유 없이 이곡 저곡이 금지되어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노래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 같은 국내 상황에 실망해 노래를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자는 결심을 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휘파람을 부세요’가 금지된 것과 관련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토록 흔하게 들렸던 휘파람 소리를 그 이후 길이나 골목에서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소 핫, 소 핫 내가 어쩔 줄 모르게 해/ 나지막이 불러줘 내 귓가에 도는 휘파람처럼….’ 굴지의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가 오랜만에 선보인 걸 그룹 ‘블랙핑크’의 데뷔곡이 마침 ‘휘파람’이다. 휘파람 선율이 강렬하다. 왠지 모르게 자유와 긍지의 울림으로 들린다. 휘파람이 듣고 싶은 시절이요, 계절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