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새누리당

2016.09.30 20:35 입력 2016.09.30 20:37 수정
백병규 시사평론가

[세상읽기]벌거벗은 새누리당

말 그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려 중태에 빠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이 그 농민이 왜 죽었는지를 알아봐야겠다며 부검영장을 두 번이나 청구해 기어이 받아낸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일까? 어떻게 죽었는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굳이 부검을 해야겠다는 경찰의 집착이 왜 그런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공권력에 의해 한 시민이 죽음에 이른 데 대해서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자신들의 면책을 위해 그 주검까지 또다시 훼손하려는 이 뻔뻔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법원이 발부한 조건부 부검영장도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부검 장소나 방법을 유족과 협의해 진행하라는 조건을 붙인 영장은 마치 유족을 배려한 듯하지만, 실상은 터무니없는 면피성 조건일 뿐이다. 대체 부검은 절대 안된다는 유족과 협의해 부검을 하라는 조건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을까. 경찰이 유족들에게 협의공문을 보낸 것으로 그 조건은 면피될 터이다. 되레 유족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기 십상이다. 최초에 용기를 내 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 다시 영장을 청구한 검경, 아니 그 뒤에 어른거리는 정권의 압력에 결국 무릎을 꿇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그동안의 진료기록으로만 보더라도 명백한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병사’로 기록한 것은 또 어떤가. 외부 충격 등의 요인으로 사망했을 때 ‘외인사’라고 기록해야 함에도 질병으로 인한 ‘병사’라고 기록한 것이 과연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들의 양심과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서울대병원의 이런 황당한 사인 기록은 결국 경찰이 부검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근거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온갖 이상한 일들 또한 다르지 않다. 권력의 내밀한 메커니즘을 잘 알 수 없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너무 뻔한 일이다. 권력의 개입과 입김 없이는 이루질 수 없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아채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막무가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면서 오히려 언론과 야당을 탓한다. 국가위기 국면에 대통령을 흔들고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뒤 새누리당이 보이고 있는 모습도 가관이다. 명색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당 대표가 단식으로 쐐기를 박고 나선 것은 기가 찰 노릇이다. 무엇보다 그 명분이라는 게 하찮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의사진행과정에서 위법을 저질렀다고 고발장까지 냈지만, 그런 식이라면 지금까지의 국회의장들은 모두 감옥에 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 장관들이 필리버스터 하는 신종 사보타주 방식까지 동원해가며 의사일정을 방해했던 게 누구인가. 차수 변경에 대한 협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새누리당이 날치기 처리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어차피 의석수로 보았을 때 처음부터 저지하기 어려웠던 사안이다. 국민의당이 나름 여지를 만들어주었지만 그 여지마저 단박에 틀어막은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북핵 퍼주기’ 발언 등으로 호남 민심을 자극한 박 대통령이다. 야당이 제안한 정치적 절충을 거부한 것도 새누리당과 청와대다. 또 박 대통령은 일언지하에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일축해버리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더라도 새누리당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설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4·13 총선의 민심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선언을 뒤집은 새누리당 의총에서 한 의원은 “저들이 집권여당이 되면 우린 죽는다”며 국감 복귀 반대를 외쳤다고 하지만 새누리당의 ‘지금 이대로’가 바로 ‘죽는 길’로 가는 첩경일 터이다.

권력기구와 집권여당, 그리고 그 주변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일들이 이렇게 자주 발생하는 것은 위험하다. 권력집단이 그 이상징후를 감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당연시할 때 정치·사회적 갈등과 긴장은 위험수위를 넘나들게 된다. 국가적으로도 큰 혼란과 대가를 치러야 하며 집권세력에게도 그것은 정치적 재앙이 된다. 평소 별말 없이 있다가 중요한 고비에 소신대로 행동에 나선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 같은 이가 있다는 게 집권세력으로서는 그나마 희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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