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스러움

2016.10.06 21:09 입력 2016.10.06 21:11 수정

[로그인]전경련스러움

산업혁명 이후 지난 세기까지 경쟁은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생존을 위한 시장 선점 경쟁은 기술 개발과 가격 인하를 촉진했고 이는 소비 창출로 이어지며 기업의 이윤을 늘려왔다. 그 결과 전체 경제 규모는 급증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 기업이 생산능력을 높이려는 투자 이유 역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거대함은 기업의 권력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모이제스 나임 <권력의 종말>) 성공한 기업이란 큰 기업, 특히 한국에서는 재벌이 그 상징이었다. 재벌 오너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이 때문에 재계의 ‘맏형’이란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지난달 28일 열린 창간 70주년 ‘경향포럼’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기업들은 저성장·저금리·고부채라는 ‘뉴노멀’ 시대의 돌파구를 연결에서 찾았다. 연결은 개방과 협력을 의미했다. 신동훈 삼성전자 상품전략그룹장은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사물인터넷(IoT)의 3대 원칙은 개방성과 상호운영성, 산업 간 협력”이라고 발표했다. “모든 물건이 감각을 갖는 ‘지능 진화 시대’”(조이 탄 화웨이 대외협력대표)에 기업들은 “연결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창조”(임지훈 카카오 대표)와 “소통을 위한 데이터 고속도로 개발”(션 차이 ZTE 최고기술책임자)에 투자하고 있다.

최고 혁신기업 구글의 미래 비밀프로젝트(구글X) 등을 총괄하는 모 가댓 혁신대표는 “제품이나 성능의 점진적 개선은 ‘시간낭비’”라고 잘라 말했다. 의도적이고 과감한 혁신이 뉴노멀의 돌파구라는 것이다. “기존 자본주의에서는 제품 100만개를 팔면 얼마나 벌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만 구글은 제품을 만들어 100만명이 사용하면 돈은 따라온다고 본다”며 제품이 아닌 문제 해결이 먼저라고 했다.

한국 경제에서 사위어가는 역동성도 기존의 전통과 사고방식으로는 되살릴 수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전경련 홈페이지)이라는 구호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누구나 시대를 앞서기 위한 비전을 찾고 있지만 전경련은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도리어 최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을 보면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개발독재 시대로 퇴보하고 있다. 정권의 기호에 맞는 사업을 위해 전경련이 정권을 대신해 서열에 맞춰 삼성, 현대차, SK, LG 등에서 774억원을 ‘모금’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있다. 의혹은 점점 사실로 향하고 있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이제껏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전경련 스스로 자유시장경제의 원칙들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지도 않은 창립총회를 연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편법을 동원해 투명성을 스스로 짓밟았다. 이사회 운영 등 재단 운영에서 자율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극우단체 어버이연합에 차명계좌로 5억원 넘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들통났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불확실성’을 키웠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커녕 기업이미지를 손상시키며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를 단절시키고 있다. “두 재단 운영상 공통부분이 많고 조직구조, 경상비용에 따른 비효율”을 재단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효율성과 비용절감이라는 경영의 기본조차 몰랐다는 실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사실 이 모두가 전경련이 1961년 5·16 쿠데타의 산물이란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고 정치·경제적 특혜를 구하던 ‘전경련스러움’에서 공정·경쟁·투명성은 물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대비하는 연결·개방·상호협력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구글X에서는 실패한 증거가 확실해지면 “신이 나서” 아이디어를 폐기처분하고 보상을 한다. 점진적 개선은 시간낭비다. 시대정신에 뒤처진 전경련의 존재가치를 묻는 질문에 답은 명확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