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가 말 안 들으면, 기업 목을 치는가

2016.10.11 20:49 입력 2016.10.11 20:52 수정
박종성 경제에디터

정부는 다양한 이해를 조정해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주장에 함몰되거나 감정적인 접근으로 판을 깨는 일을 해선 안된다.

[정동에서]대주주가 말 안 들으면, 기업 목을 치는가

“팔 하나를 자르겠다는 대주주의 결단이 없었다.”

지난주 국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 중단’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조양호 회장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보이지 않아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대주주가 책임을 지지 않는데 국민의 혈세로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말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선 분명히 해두자. 한진해운 사태의 1차 책임은 경영에 실패한 조 회장 일가에 있다. 회사를 수렁에 빠뜨린 조 회장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업체다. 40년간 세계 곳곳에 영업망을 구축했다. 자금지원을 중단하면 국내외에 생길 파장이 불보듯 했다. 그런데 위험천만한 결정을 하면서 정부는 현장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해운업계는 국제 무역량이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진해운도 마찬가지였다. 채권단 자율협약 상태에 있던 한진해운은 올 들어 자금난이 더 심해졌다. 해운업계는 한진해운이 혹시나 잘못될 것을 우려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120만개 컨테이너가 정지되면서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화주들의 클레임이 잇달을 것이며 연간 국가경제 손실규모가 17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해운산업은 일단 무너지면 이전 상태로 회복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래서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과 한진해운 간 줄다리기는 있겠지만 숨통을 터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채권단은 자금지원 중단 결정을 통보했다. 이로 인해 빚어질 파장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듯 대책을 발표했다. 피해 방지를 위해 대체선박을 투입해 화물수송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맞춤형 금융지원, 선박펀드 가동, 주요 거점 터미널 확보 등 범정부적인 지원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허공에 그린 무지개였다. 대책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됐다.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은 바다 위에 유령선박처럼 떠돌았다. 화물수송은 올스톱됐다. 정부는 한진해운에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한진해운 사태는 정부의 대책없는 질주가 빚은 ‘해운산업 참사’다. 정부는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을 그대로 드러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해운은 필수적인 인프라다. 그리고 유사시에 전략물자 수송에도 필요한 전략산업이며 성장잠재력이 있는 미래산업이다.

그러기에 각국은 위기에 처한 해운기업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계가 어려움에 처하자 프랑스는 세계 3위 해운사인 CGM의 유동성 위기 때 6억5000만달러를 지원했다. 독일 정부는 세계 6위 해운사인 하팍-로이드의 유동성 위기 때 18억달러의 지급보증과 1억5000만달러의 현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조선산업에는 10조원 이상을 퍼주면서 해운산업에는 강경 일변도로 몰아붙였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에는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의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자금지원을 약속받으며 내건 영업이익 달성, 일감 수주, 자회사 매각 등을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게다가 5조원의 분식회계 사실이 밝혀졌으며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아직도 한진해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의 대책은 스스로 대체운송수단을 찾으라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했고 자금지원과 관련해 금융기관은 정작 내용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진해운 퇴출 시 직원 1428명을 포함해 연관산업에서 1만1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조선과 해운 산업을 차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형평성’을 잃었고 자금 투입에 따른 효과보다 지원 중단에 따른 손실이 더 커져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미래산업인 해운산업에 그동안 쌓아왔던 영업 노하우를 상실함에 따라 ‘미래’도 상실했다. 해운강국의 꿈은 ‘해운 악몽’으로 끝났다.

정부는 오너가 팔을 자를 각오를 하지 않는다며 기업의 목을 쳤다. 그리고 최소 수천개의 일자리도 사라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산업을 죽이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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