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샤먼

2016.11.03 20:47 입력 2016.11.03 20:48 수정
전우용 역사학자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창신동에서 백낙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육의전의 으뜸인 선전(비단상점)의 거상이었던 그의 할아버지 백윤수는 1916년에 대창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선전의 여맥을 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기업 대다수가 단명했던 것과는 달리, 백씨 일가의 가족기업이었던 대창무역주식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30년대 말에 사망한 큰형 백낙원의 뒤를 이어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백낙승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중 일본군에 비행기를 헌납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보를 통해 사업을 한층 확장했다.

[시대의 창]현대의 샤먼

해방 후에는 이승만에게 매달 50만원씩 생활비와 활동비를 대주는 것 외에 수시로 거금을 보냈다. 정부 수립 후에도 이 ‘후원금’을 끊지 않아, “달러에 벌벌 떨던 이 박사가 일본 기계를 들여와 태창방직을 확장하도록 허가해 준 것은 이 인연 때문”이었다고 한다(이승만의 비서였던 윤석오의 회고). 이승만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덕에 백낙승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한국 최초로 ‘재벌’이라는 칭호를 헌정받기에 이르렀다.

한국 최고 재벌의 막내아들로 호사를 누리던 백남준은 1949년 17세 때 돌연 홍콩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승만에게 무기 구입 밀명을 받은 백낙승이 홍콩에 가는 길에 좌익 청년들과 어울리던 막내아들을 동행시켰다는 설이 있다.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백남준은 일본 도쿄대 학생이었다. 한국에서는 같은 또래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죽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는 국교 단절 상태인 일본에서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까지 평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쿄대를 졸업한 뒤 그는 다시 독일로 향했다.

백남준은 독일에서 철학과 음악을 전공했는데, 학업 부담보다는 인종차별 때문에 더 고생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일본은 동맹 관계였지만, 그때만 해도 독일에 ‘황인종’은 거의 없었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모두 황인종으로 묶어 버리는 독일인들의 시선 앞에서, 그의 자의식도 황인종으로 용해, 확장되었다.

사실 그의 생애에서 ‘한국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했던 기간은 아주 짧았다. 그는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우고 ‘동방요배’를 하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민족반역자’로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한국인 젊은이들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무감’을 가장 강력히 요구받던 시기에, 그는 일본에 있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도 그의 자아가 민족을 초월한 지점에 자리 잡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황인종에 대한 경멸적 시선에 괴로워하던 그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가온 것은 독일인을 포함한 유럽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를 안겨준 황인종의 영웅 칭기즈칸이었다. 이후 그는 몽골-아시아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몰두했고, 그 문화의 정수를 샤머니즘에서 찾았다.

마침 TV 수상기가 급속히 보급되던 때였다. 그가 보기에 TV 수상기는 자기 몸에 다른 사람의 혼령을 받아들이고, 자기 입으로 그 혼령의 말을 대신 전하는 샤먼 그 자체였다. TV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타인의 영혼이었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 영혼의 음성이었다. 현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비디오 아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백남준이 TV 수상기를 샤먼의 몸으로 해석한 건 탁견이었다. 이 물건은 실제로 현대의 샤먼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대중은 TV 수상기를 통해 흘러나온 개그맨들의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마치 방언이나 주문처럼 암송했고,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따라 했다. TV 수상기가 보여주는 영상과 들려주는 말들은 선지자의 예언과 같은 권위를 지녔다. 대중의 논쟁은 종종 “TV에서 봤다” “TV 뉴스에 나왔다”는 말로 종결되곤 한다. 아직 TV를 중심으로 구축된 현재의 미디어 체계에서는 의심하고 질문하고 따지는 게 쉽지 않다.

요즘 TV 수상기가 내보내는 것은 온통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이권개입에 관한 영상과 이야기들이다. 최순실의 일파는 누구이며, 협조자는 또 누구인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정작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는 동안 TV 수상기에 내보낼 화면과 음성을 편집했던 사람들, 현대의 샤먼을 실질적으로 조종했던 사람들의 이름은 빠져 있다.

정권에 빙의되어 현 정부의 모든 정책을 극구 칭찬했던 주역은 방송사들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것인가? 설령 그렇다 해도 흔한 사과 한마디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현대의 샤먼인 TV의 위세는 앞으로도 쉬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샤먼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책임도 무겁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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