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판타지, 드라마가 주는 ‘그것’

2016.12.11 21:27 입력 2016.12.11 21:31 수정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김은숙은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주는 판타지가 무엇인지 잘 아는 작가다. 아무도 김은숙의 드라마에서 인간성의 탐구나 통속적 핍진함, 전복적인 예술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잘 세공된 캐릭터와 차진 대사, 적절히 선택된 배우의 감각적 구현, 인물 간의 절묘한 호흡과 리듬. 그리고 그것이 쉴 새 없이 공급하는 1시간의 판타지(“살다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김은숙 드라마에 두 손 들고 기대하는 바다.

[지금 TV에선]‘도깨비’의 판타지, 드라마가 주는 ‘그것’

전작 <파리의 연인>, <시크릿가든>, <태양의 후예>가 현실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이었다면, tvN <도깨비>는 비로소 진짜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왔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공식은 그대로다. 다만 <도깨비>에서 “온갖 불행 소스를 다 때려 넣은 잡탕 같은 인생”의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에게 손 내미는 남자는 신적 존재인 도깨비(공유)다. 어디서든 촛불을 불면 소환되는 그는 ‘키다리 아저씨 판타지’의 궁극이다. 능력치는 재벌을 한참 넘어선다(그는 재벌 회장을 종으로 부린다). 돈은 물론이고 텔레파시, 순간 이동, 기후 조종 능력까지 전지전능이다. 겉보기에 완벽한 남주인공에게는 물론 슬픈 사연이 준비돼 있다. 가슴에 박힌 검을 빼내기 전에는 죽지 못하는 태생적 저주. 거기다 검을 뽑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을 만나면 그와 동시에 죽음을 맞아야 하는 아이러니까지. 이제 남은 것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향해 달려가는 일이다.

그러나 김은숙 드라마의 재벌, 신데렐라, 기억상실, 사고 등 상투적 요소들은 종종 ‘비트는 재미’를 위해 사용된다. <도깨비>는 판타지 설정을 이용해 상투적 요소들의 기능을 극대화해 놓은 다음, 어느 때보다 공공연한 유희에 돌입한다. 지은탁은 적극적 신데렐라를, 도깨비 김신은 대놓고 멋있어 보이는 데 집착하는 남주인공을 자처한다. “재벌이라 하면 응당 학교 앞까지 세단을 몰아 세간의 관심을 주목시켜야 하지” 같은 대사도 무시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도깨비>는 극대화된 판타지성을 발판 삼아 드라마가 우리에게 하는 일에 대해 작정하고 말하고자 한다. 지은탁은 마치 저 홀로 드라마 판타지 속으로 걸어 들어간 현실의 인간처럼 보인다. 평범한 여고생인 그녀가 포털을 통해 꿈의 ‘단풍국’으로 텔레포트할 때,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램프의 요정처럼 나타나 사채업자들을 물리치는 걸 볼 때, 파도치는 방파제에 홀로 서서 삶을 비관하다 기적처럼 소환된 도깨비와 마주 섰을 때, 그녀는 홀로 애니메이션 위에 떠있는 실사 같다.

때로 이 모든 일들이 판타지를 좋아하는 외로운 여고생이 교실에 턱 괴고 앉아 펼치는 애틋한 망상처럼 보인다. <도깨비>는 이런 메타적 형식을 통해 풍진세상 우리에게 손 내미는 초현실적 존재가 바로 드라마, 허구 자체임을 드러낸다.

도깨비 김신은 자신이 주는 샌드위치를 건네받고 수호신의 존재를 경험한 망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다. 허나 그대처럼 나아가는 이는 드물다. 그대의 삶은 그대 스스로 바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대의 삶을 항상 응원했다.”

김은숙은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는 일. 그러면서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일. 하긴, 그런 것이 아니라면 대체 드라마를 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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