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없다

2017.05.26 21:24 입력 2017.05.26 21:36 수정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세상읽기]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없다

촛불혁명 기간 내내 촛불정신의 완성을 위한 개혁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그중 가장 뜨거웠던 논쟁은 ‘적폐청산 대 국민통합’ 논쟁이었다. ‘통합론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대립적 위치에 놓았고, ‘청산론자들’은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을 주장하였다. 촛불혁명 기간 중 탄핵국면에서 촛불민심은 압도적으로 적폐청산을 지지하였으나, 선거국면에 들어서면서 촛불을 지지한 일부 후보들이 적폐청산 피로감을 이야기하면서 이제 국민통합에 나서야 한다면서 촛불시민들을 분열시키려 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는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고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 촛불민심이라는 선거유세를 하였다. 대선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완승이었고 ‘적폐청산론’이 촛불민심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통합론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핵심 범죄자들을 사법처리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고 인권을 회복시켜 정의를 다시 세워야 국민통합이 이루어진다. 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이루어질 수 없다. 청산대상인 극소수의 적폐세력까지 대연정에 참여시켜 이룬다는 통합론자들의 국민대통합은 ‘가짜 국민통합’이다. 이는 가해자인 적폐세력을 진실을 밝혀 징벌하지도 않은 채 사면하는 것과 같다. 영화 <밀양>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가 먼저 스스로 용서받았고 화해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은 한국에서의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세우기이다. 1974년에서 2000년까지 민주화가 일어난 100개국 중 52개국에서 과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진실위원회와 전환기 재판(transition trials)이 설치되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칠레와 함께 진실위원회와 전환기 재판이 모두 설치된 17개국 중의 하나이다.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고, 민주화 연구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민주정부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적폐에 대한 ‘과거청산’ 노력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박근혜가 반과거청산을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스스로 국정을 농단하는 권위주의로의 퇴행을 막지 못하였다. 따라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시대정신인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전환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첫째, 적폐청산이 정치적 편견과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아닌 전환기 정의 철학과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적폐, 국정농단, 국민농단, 국가폭력, 국가약탈, 범죄, 그리고 인권침해와 유린을 ‘재해석’하고, 징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정의 세우기이다.

둘째,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정권의 적폐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이 있어야 한다. ‘진실 밝히기’보다 더 적폐세력의 반격을 막고 제압할 수 있는 무기는 없다. 이를 위해 진실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침해, 과거 범죄, 국가폭력, 국정농단, 국가공권력의 갈취행위(racketeering)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진실위원회는 포용, 상호주의, 심의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청문회, 공청회, 미디어 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를 통해 진실을 밝힌다.

셋째, 국정을 농단한 핵심 범죄자들을 전환기 재판에 세워서 징벌해야 한다. 징벌은 철저히 법의 지배 원칙에 의거하여 처리해야 반적폐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도 진실위원회는 더 많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징벌적 정의 원칙과 타협하면서까지 ‘진실을 위한 사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진실이 밝혀지면 희생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 상처 치유가 이루어져서 국민통합의 단계에 들어간다. 범죄자에 대한 징벌과 함께 희생자 보상과 치유가 이루어지면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전 국민이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지더라도 적폐세력의 범죄와 국정농단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적폐를 청산한 기록과 기억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 적폐세력을 용서할 수는 있으나, 그 기억을 지우면 우리는 다시 그 적폐세력에 의해 농단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적폐를 기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반인권, 반인륜적인 적폐와 국정농단의 재발 방지를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