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받아들이자

2017.06.09 21:04 입력 2017.06.09 21:05 수정

[별별시선]더위를 받아들이자

벌써 여름이 코앞까지 왔다. 건물 안에는 종종 찬 기운이 서려 있기도 하지만 대낮의 거리를 걷다보면 금세 콧잔등에 땀이 맺히곤 한다. 매일 낮 기온이 올라가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패션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액세서리처럼 대롱대롱 목에 매달린 휴대용 선풍기이다. 아이들 하굣길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도, 아기를 태운 유모차에도 1인용 선풍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지구가 계속 더워지고 있으니 더위를 식혀줄 물건들이 시장에 새롭게 등장하나보다.

인터넷에는 저렴하고 쓸 만한 선풍기를 광고하는 글이 넘쳐나고 뉴스에선 폭발 위험 없이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골라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구입하기 전 확인할 사항은 무엇인지, 어떤 브랜드가 쓸 만한지, 국산과 외국산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무궁무진하게 찾을 수 있는 반면 정작 이 물건이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날이 계속 더워지니까, 내 얼굴에 땀이 나니까, 해가 내리쬐는 여름이니까 그저 너도나도 하나씩 손에 쥐고 거리를 걷는 것이 진짜 정답일까.

선풍기는 절대로 공짜로 도는 일이 없다. 날개가 움직일 수 있는 까닭은 전기에너지가 힘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기들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는 핵발전소의 위험을 감내하고, 화석원료가 뿜어내는 열기와 먼지를 받아들인다. 내가 더 시원해질수록 내가 사는 지구가 더 더워지는 이 순환을 계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게다가 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우리에게 손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당연스레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켜기 전에 먼저 해봄직한 일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양쪽으로 창을 열어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선풍기 대신 부채를 손에 드는 것이다. 등목을 해도 좋고 시원한 물로 발만 한번 씻어도 기분이 달라진다. 저녁에는 둔치나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래도 더위가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자. 여름은 원래 덥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내가 추운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내려고 혹은 더운 여름을 덥지 않게 보내려고 할 때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쉴 곳이 없어진 북극곰일 수도 있고, 폭염으로 쓰러진 내 이웃일 수도 있고, 열대야에 잠을 설칠 나일 수도 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끊임없이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생협 매장에서 장을 보아도 비닐봉지 한 뭉치를 쓰레기로 내놓게 되고 생산자로부터 직접 채소꾸러미를 받아먹는데도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가 버려진다. 내가 켜달라 말한 것은 아니지만 버스·지하철만 타도 에어컨의 혜택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수시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전기를 양껏 사용한다. 그 결과 세계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탄소 발생량을 7% 줄이는 동안 우리나라는 110% 증가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웠다. 불명예도 이런 불명예가 없다.

<김산하의 야생학교>는 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 비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되라고 권한다.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에 매일 몸을 싣고 출퇴근하는 이라 할지라도 이번 여름만큼은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육식이 주는 행복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도 올여름에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에어컨을 꼭 끄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지 않아도 지구를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온도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이번 더위만큼은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기를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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