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도시 커플 생이별 막자

2017.06.04 21:16 입력 2017.06.04 23:06 수정

일요일 오후 5시30분. 서울역이나 삼성역, 또는 종합운동장역 근처에 가면 수십명 또는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은 주말에 한 소개팅 이야기 또는 애인 이야기를 하고 40대가 넘어 뵈는 남자들은 애들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창원, 울산, 거제, 여수 등 산업도시 일터로 돌아가는 회사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이다. 1990년대 중후반엔 주로 40~50대 ‘기러기 아빠’들이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부터는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아빠들은 전세 등을 얻어 아내와 아이를 서울로 보냈다.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세주고 아빠는 사택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셔틀버스의 구성원은 훨씬 젊어졌다. 20~30대 남성들이 늘었다. 주말에는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소개팅을 하고, 주중에는 산업도시에서 근무하는 남자들이다.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한 주말부부는 남성 가장 한 명이 식구를 먹여살리는 ‘남성 생계부양자’ 시대의 산물이었다. 고소득과 장기근속의 힘이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2017년 젊은 부부에게 맞벌이는 시대정신에 가깝다. 높아지는 주거비 등 생활비,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혼자 벌어 먹이는 ‘남성 생계부양자 가족’은 더 이상 재생산이 가능하지 않다고 그들은 판단한다. 떨어져 있더라도 둘 다 벌어야 한다.

[별별시선]산업도시 커플 생이별 막자

산업도시 지방정부에 셔틀버스는 예민한 문제다. 주말 셔틀버스야 막을 수 없지만, 근처 대도시로 매일 통근하는 버스 운용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직원들이 스스로 버스를 임차해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지방정부의 행태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직원들의 관점에서는 그저 복지를 막는 몽니일 뿐이다. 재생산에 대한 낡은 관점이 문제다. ‘든든한 남편 직장’이 있으면 여전히 여성들이 ‘전업 주부’로 남편을 따라올 거라는 가정 말이다. 회사의 시니어들은 후배들에게 젊은 때는 부부가 같이 사는 게 좋지 않냐고 설득한다. 젊은 남성 직원들에게는 이 말은 수도권에 간신히 일자리를 잡아 일하는 아내의 ‘경력 단절’로 다가올 뿐이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도 어렵다. 어느 지역이든 원할 때마다 옮겨가면서 일할 수 없는 직군이라면 당연히 그렇다. 현실적으로 지방의 산업도시를 재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남초 집단인 중공업 현장에 여성 엔지니어를 충분히 채용하는 것이다. 2016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의 결과를 보면 조선·석유화학·자동차·기계 등의 산업을 보유한 경남, 울산, 전남의 여성 인력 채용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미래’를 보여주는 20대 여성 고용 또한 모두 7% 이내에 그친다. 공대 신입생의 4분의 1가량이 여학생이고, 자연계는 절반이 넘었지만 기업의 시선은 ‘제조업은 남자’라는 편견으로 가득하다. ‘남성 공대생’의 안전한 전공 선택지로 간주되는 ‘전화기’(전기·전자, 화공, 기계)를 선택한 여학생들은 동기 남학생보다 더 높은 취업 경쟁 앞에 망연자실한다. 지방근무를 여성들이 기피한다고만 말할 수 없다. 지방근무를 ‘회사가 막고’ 있는 상황도 적지 않다.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적 인재가 몰려야 기업과 도시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다양성 수용과 기술적 인프라가 그 핵심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통한 성평등, 산업도시의 재생산을 통한 균형발전, 산업의 진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 여성 엔지니어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채용하려는 산업도시의 제조기업이 출발점이다. 여성 엔지니어가 산업도시의 기둥이 되도록 도시 인프라와 돌봄환경을 정비하고 기업의 채용을 확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이미 지방 이전이 완료됐거나 이전이 진행 중인 공기업도 같은 궤에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산업진화뿐 아니라, 수많은 젊은 주말 엔지니어 커플의 생이별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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