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위헌

2017.09.01 20:55 입력 2017.09.01 21:05 수정
법인 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사유와 성찰]시민의 위헌

어느 날 오후,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흔히 할 수 있는 생각을 확인하였다. “애들아, 잘 봐라. 공부 못하면 너도 저 아저씨들처럼 후지게 사는 거야.” 땀을 흠뻑 흘리며 악취 나는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을 보고, 어느 어머니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딸에게 하는 말이다. 사실 곳곳에서 듣게 되는/말하는, 모종의 낙인 찍는 이런 말들은, 세심히 헤아려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일정 정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택시 기사들에게 듣는 말이 있다. 어린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좋은 직장 얻어 자기같이 후지게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는 것이다. “택시 운전하는 일이 어째서요? 왜 기사님 인생을 스스로 비하하십니까?” “밤낮으로 일해도 애들 가르치기 힘들고요, 무엇보다도 깔보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디 자존심 상해서 살겠습니까?” 이렇듯 노동자가 겪고 있는 고통과, 노동하는 자신에 대한 비하는 타인에게 받는 ‘모멸감’이 큰 원인이다.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손짓과 표정과 언사는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으로 귀결된다. 감정은 우리 모두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엔진이다.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폭언이 여전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대기업 회장과 군의 최고 지휘관 등 자본과 위계의 갑질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피해자나 가해자 둘 다를 생각할 때마다 새삼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생각한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기에, 온갖 모멸감을 견뎌야 하고, 이 때문에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현실 앞에, 밥을 먹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 인간은 왜 신성과 존엄의 밥을 이렇게 모멸과 슬픔의 밥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럴 때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쓸쓸해진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모멸감을 안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모멸감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사실 또한 삶의 역설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일이 일상에서 일어난다. 콜센터 상담원에게 온갖 욕설과 막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평범한 이웃일 확률이 높다. 하여,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갑질의 평범성’ 또한 우리가 주목하고 성찰해야 할 문화일 것이다.

얼마 전 감정노동자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요지는 고객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콜센터 상담원들을 위하여 통화 연결음을 바꾸었고, 많은 욕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드릴 예정입니다.”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상담원은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메시지 때문에 고객의 태도가 아주 좋아졌다는 소식을 대하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처방은 한걸음 물러서서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노측과 사측, 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을 때 ‘가족처럼’을 내세우는 태도와 방식은 과연 문제의 본질을 적확하게 직시하는 자세일까.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이 일을 나에게 견주어 이웃에게 폭력을 행하지 말라”는 <법구경>의 말을 주목해 보자. 그렇다! 바로 모든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다름 아닌 개개인의 개체 생명을 말한다. 개체 생명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성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친절과 예의는 영업이익을 내기 위하여, 혹은 가족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라는 전제를 두지 않아야 한다. 이웃을 존귀하게 대하는 일이 내 삶을 존귀하게 만든다는 이치에서, 도덕과 윤리의 첫째 덕목은 이웃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지 않는 일이라는 이치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맺어지는 것이 으뜸가는 품격이고 자연스러운 삶이 아닐지.

<법화경>에는 상불경 보살이 등장한다. 모든, 다른, 사람들을, 가볍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보살은 사람들을 만나면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대들을 매우 공경하고 감히 경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언젠가는 부처가 되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은 상불경 보살의 선언과 맥이 닿아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 헌법과 법률은 고위층만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민은 지위와 직업 등을 이유로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된다. 아울러 시민은 어떤 차별을 ‘해서도’ 안된다. 평범한 시민에게도 위헌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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