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가치와 국가의 운명

2017.09.08 20:54 입력 2017.09.08 21:06 수정

[사유와 성찰]도덕의 가치와 국가의 운명

이 땅에서 존경받는 분들의 핵심 사상에는 한반도에 대한 간절한 애정이 넘쳐난다.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의 백성이 되는 것을 자신의 소원이라고 한 김구는 홍익인간이 보여주는 이상을 기반으로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가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땅에 성현을 만드는 문화건설을 통해 우리 조상이 좋아하던 인후의 덕을 구현함으로써 도덕적으로 권위 있는 민족이 되길 원했다.

근대 여러 종교가들은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높은 정신세계의 원천인 진리나 도덕에서 찾았다. 최제우는 <용담가>에서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보냐”라며, 우주의 근본인 무극을 통해 이 땅이 진리적인 세계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이 세계상등국이 될 것을 예언한 강일순은, 앞으로 천지가 덕을 합하는 세상이 됨에 따라 천하는 한집안이 되며, 온 인류가 한 가족으로 화기(和氣)가 무르녹고 생명을 살리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고 한다. 박중빈 또한 장차 이 한반도가 높은 정신문명으로 인해 세계의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근대종교인들의 생각에는 후천개벽사상이 담겨 있으며, 여기에는 민족우선의 선민의식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도덕적 수준이 국가의 운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렇게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은 앙숙으로 늘 극한경쟁을 일삼는다. C라는 사람은 A와도 친하고, B하고도 친하다. C가 B와도 친하다는 사실을 A도 인정하고, A와도 친하다는 사실을 B도 인정한다. 그런데 왜 A와 B는 C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C는 싸우는 양자가 공히 인정할 만한 뭔가를 내적으로 갖추고 있다. 그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싸움이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중재해 줄 C의 도덕성이 아닐까. 한반도의 민중을 높게 평가하고, 세계의 중심국이 되길 바라는 선각자들은 그 도덕성이야말로 이 땅에서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임을 암시해 준 것이다.

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왜 강대국들 사이에서 남북문제를 자신의 의도대로 과감하게 이끌고 갈 수 있었던가, 하는 이유로 그의 높은 도덕성을 들고 싶다. 3·1민주구국선언 때문에 1976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된 뒤 재판의 최종 변론에서 그는 정치적 자유, 경제적 평등, 사회적 정의가 자신의 기본적 신념이라고 했다. 스스로 5차례의 죽음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그는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일관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고 독재에 항거했다. 특히 국민 안보는 국민의 능동적인 협력과 참여가 최대의 요건이며, 민주주의만이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다. 앞의 여러 선각자들이 원했던 이 나라의 복된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외교나 국방의 일은 갈수록 희망보다는 불안을 던져주고 있다. 사실 촛불혁명은 한반도에 대한 희망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세계사 속에 유례가 없는 이 무혈혁명은 새 정부에 높은 도덕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국민은 권력의 사유화에 철퇴를 가했으며, 다음 정권은 국민을 믿고, 국제사회에도 이 땅에 자주적으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선포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틀 전 성주에 강행한 잔여사드배치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굴복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높은 도덕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어야 했다. 그것을 국가운영의 최대치로 삼고 강대국에도 당당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이 애써서 쌓아올린 높고도 당당한 위치에서 논의하고 협상할 수 있었던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그 입지도 낮아지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1960년대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주체사상을 통한 등거리외교로 양국과의 관계를 전화위복으로 삼은 외교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체사상보다도 더 영속적인 높은 도덕문화에 대한 국민적 자신감이 있으며, 그 힘을 보여준 촛불혁명을 비롯한 민주화의 풍부한 경험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현 정부가 이러한 국민의 내적 자부심과 외적 위상을 든든한 배경으로 국가를 이끌어 간다면, 이 나라는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며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정부는 촛불의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원점으로 돌아와 국민의 마음을 다시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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