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의 생명·탈핵 실크로드

잠 못 이루는 세월

2017.09.29 21:08 입력 2017.09.29 21:14 수정
이원영 수원대 교수 국토미래연구소장

지난 2월 탈핵·생명 실크로드 출범에 맞춰 관련자들이 모여 깃발을 들어보이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 2월 탈핵·생명 실크로드 출범에 맞춰 관련자들이 모여 깃발을 들어보이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하나. “아니, 유엔기구가 그럴 수가!”

때는 2009년 8월, 한국에 온 유엔환경계획(UNEP)의 아킴 슈타이너 사무총장을 따라온 전문가들에게 운하반대교수모임의 임원들은 4대강 사업의 부당한 근거들을 제시하고는 UNEP가 이를 비판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웬걸, 그들은 4대강 사업이 녹색성장의 모범사례라는 리포트를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음은 물론이다.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뭇 생명들이 죽어가는 모습과 치명적인 수질악화가 예견되지 않았단 말인가.

둘. 1979년 미국 스리마일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자 일찌감치 문제를 파악하고 있던 독일 시민사회는 반대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그러던 1986년 다시 체르노빌에서 핵사고가 났고 800㎞ 떨어진 독일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꿈적하지 않자 운동가들은 엄청난 결기를 보인다. 주로 문사철 출신이었던 그들이 중년이 되어서 공과대학에 다시 입학한 것이다. ‘핵발전소가 아니라도 그리고 화석연료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깨끗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그 결실의 하나가 지금 지구촌을 혁명 상태로 이끌고 있는 태양광이다. 미국 최대의 전력회사 NRG에너지의 CEO인 데이비드 크레인은 몇 년 전 이미 핵심을 말했다. “전깃줄에서 얻는 전기보다 지붕에서 얻는 전기가 싸진다. 그것도 2014~2016년 사이에.” 그 말이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전향한 환경운동가’ 마이클 쉘렌버거는 데이비드 크레인을 설득할 수 없다.

셋.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는 엄청난 사건이다. 같은 사고가 세 번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 확률의 세계로 들어간다. 일정한 기대치가 존재한다. 50년에 3개면 1000년 동안 60개 사고가 나는 것이다. 60개! 그 정도 확률이면 지구상에 남아날 생물이 없다.

우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을 막기 위한 근본대책이 유엔에서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7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반기문 전 총장은 엉뚱한 쪽을 기웃거리다가 망신만 당했다. 유엔은 침묵하고 있고 방계조직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발전소 안전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원래 원자력의 진흥을 위해 조직된 단체다. 구조적으로 근본대책이 나올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잠이 오지 않았다. 핵무기가 무서워서 유엔이 만들어졌는데, 왜 핵발전소는 무섭지 않다는 말인가? 전 세계의 450개가 어디서 지진이 나서 터질지도 모르고, 어디서 테러가 나서 터질지도 모르는데 왜 입 다물고 있나?

바로 우주선 지구호의 관리에 큰 구멍이 있다. 의사결정의 위임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의심, 그리고 부패한 국가권력과 그들이 돈을 내어 만든 유엔의 능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이 점점 커진다.

[이원영의 생명·탈핵 실크로드]잠 못 이루는 세월

무엇인가 모자란 부분이 있다. 지구촌에서 온전한 삶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이다. 핵발전소는 존재 그 자체로 후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양심파괴적 존재다. 그걸 버젓이 보고 있는 그 자체로 자기부정의 상태가 된다. 인류가 통째로 직무유기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마피아들의 득세 때문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핵무기 위협 때문에 유엔이 만들어졌다면, 핵발전소 위협에 상응하는 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더 위험하니까 당연하다. 지구촌을 더 이상 현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새 가능성을 찾는 다른 결기가 필요하다. 마치 1980년대 독일의 만학도들과 같은 결기!

지구호의 커다란 결점이 필자를 자극한다. 1000년 전 혜초 스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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