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평양랭면, 현대아산의 20년

2018.05.07 20:45
박용채 논설위원

“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마디로 남쪽의 평양냉면집이 대박을 쳤지만 10년 전만 해도 금강산 국제관광특구에서는 ‘평양랭면’의 본맛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특구에는 평양 옥류관의 금강산 분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평양랭면 값은 12달러로 다소 비쌌지만 메밀을 빻아 조리한 면에 소·돼지·꿩고기 육수, 층층이 쌓아올린 고명은 분명 서울의 평양냉면과 다른 맛이었다. 그 평양랭면이 평양냉면으로 잠시 외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남쪽 냉면에 길들여진 관광객들이 심심하고 담백한 북쪽 랭면 맛에 불편함을 토로해 남쪽 냉면 맛에 가깝게 만들어봤다는 것이다. 외도는 짧았고, 2008년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길이 막히면서 평양랭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박용채 칼럼]평양냉면·평양랭면, 현대아산의 20년

남북 경협의 맏형 격이자 금강산 국제관광특구를 운영했던 현대아산의 소회가 궁금해 전·현직 관계자 몇 명에게 전화를 돌려 소감부터 물었다. “현대아산의 20년 역사에 다시 전환점이 온 것 같습니다. 전반 10년은 희망가를 불렀다면 후반 10년은 희망을 기다리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기다림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요. 금강산 시설물을 마지막으로 본 게 2015년 말이지만 재개에 합의하면 3개월이면 다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2001년인가 북한 군인들이 금강산 온천시설인 온정각에 몰려와 소독을 하느니 하면서 요란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곧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왔습니다. 목조건물인 온정각을 보고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며 북한도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해보라는 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북한 일꾼들과 어느 순간부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어요. 우리는 금강산관광을 개혁개방의 첨병으로 여깁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관광객 3000명이 오갔습니다. 북한 일꾼들은 그 모습을 다 눈에 담고 갑니다.” 금강산관광 10년간 총 관광객은 200만명에 달한다. 이 중 외국인은 1만5000명 정도. 당시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인에게 금지된 세계의 절경 5곳 중 첫번째로 금강산을 꼽았다. 해외언론도 금강산의 볼거리, 먹거리 등을 소개했다.

- 피격사건 이후는 어떻게 지냈나요. “잃어버린 10년이지요. 금강산관광 중단 전 1084명의 인력이 현재는 157명으로 줄었습니다. 2500억원 넘던 매출은 반토막 났고요.” 그들은 보수정권에 할 말이 많다. 2009년 8월 현정은 회장이 북한에 머물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총격사고 재발방지, 이산가족 상봉, 백두산 관광 등 5개항에 합의한 것을 두고 당시 보수진영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혼돈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당국회담에서는 이산상봉을 제외하고 모든 합의내용은 없었던 일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개성공단까지 닫혔다. 당초 이번 판문점선언에는 경제협력이 의제로 잡히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측은 합의문에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경협 기대감은 폭발적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남북이 협력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 시나리오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노동과 토지 결합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협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쏟아진다. 현대아산은 2011년 북한의 일방적인 독점사업권 취소 발표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지만 남북 경협이 본격화하면 새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에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는 것은 남북경협이 한국경제의 출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대아산에 올해는 소떼 방북 20년, 금강산관광 중단 10년 등 시계열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해이다. 남북 정상은 금강산 그림이 걸려 있는 곳에서 회담을 했고, 소떼 방북길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가을에 북한에서 열릴 회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희망한 백두산 트레킹이 성사될 수도 있다.

-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평양랭면의 외도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금강산관광 10년의 교훈은 함께 어울리고 서로를 닮아가면서 자연스레 사는 법을 터득한다는 것입니다. 금강산의 희망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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