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한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2018.08.03 20:36 입력 2018.08.03 20:41 수정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은 지방에서는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과 중앙에서는 강력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발의하였다. 대통령의 개헌안은 지방분권과 동시에 적폐청산, 남북평화, 분배정의를 밀고 나갈 강력한 대통령을 원하는 촛불민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들은 지방분권과 동시에 중앙에서도 권력이 분산되고 공유되는 헌정체제를 원했고 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6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개헌 좌초에 대한 책임을 야당에 물었다. 그 결과 기존의 단순다수제 방식에 의해 치러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는 촛불민심과 평화민심의 압도적 지지 덕분에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세상읽기]소망한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6월 지방선거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쇠망치로 작용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은 소선거구제, 양당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3각 조응체제를 계속 고수하면 자신들은 소수정당으로 전락하고 정권교체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다. 자유한국당은 생존하기 위해 그동안 끈질기게 반대해왔던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성에 직면하고 있다.

1855년 덴마크에서 비례대표(Proportional Representation·PR) 선거제도가 최초로 실시된 이래 1878년 벨기에에서 동트(D’Hondt) 시스템으로 불리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실시됐다. 현재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33개국 중 절대다수인 23개국이 비례대표 선거제도로 대표를 선출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1789년 미국의 매디슨이 대의 민주주의를 고안한 이래 가장 획기적인 민주주의의 제도적 혁신이다.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산업화시대 계급타협의 소산이다. 비례대표제는 산업화시대에 기득권 세력이 사회주의 노동자 세력의 수적인 우세를 의석에 반영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거리의 의회’로 나가게 하기보다는 ‘투표함에서의 혁명’을 시도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도입하였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는 바로 투표함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올드 우파인 보수당과 신우파인 자유당이 표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좌파 사민당은 과반에 못미치는 제1당에 머무는 데 만족해야 했다. 1차대전 이후와 2차대전 이후 사민당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을 때, 보수 정당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선호하였다. 독일의 경우 보수세력들은 탈산업사회에 출현한 녹색정당을 체제 내로 끌어들여 사민당을 약화시키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강화하였다.

이와 같이 비례대표제는 계급타협, 이념타협, 종족타협의 결과로 출현했고, 지금 선진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선거제도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례대표가 소망스러운 이유는 독일의 경험에서 유추할 수 있다. 독일은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치적 효과로 3개 또는 4개의 온건 다당제가 유지되고 있다. 온건 다당제하에서는 대체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제1당은 다른 당과 대연정 또는 소연정을 구성한다. 연정체제가 지속되면 주요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다. 독일의 경우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실시한 이래 집권한 사민당 또는 기민당이 자민당을 파트너로 하는 연정을 구성해왔고, 연정체제하에서 자민당의 디트리히 겐셔가 계속 외상을 맡음으로써 동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으며, 1989년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졌을 때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승자 독식의 다수결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우리는 독일과 반대로 정권교체가 정책교체로 나타나 남북평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정권을 잡자마자 폐기하였고, 남북관계는 다시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2004년에 정당투표라는 부분적인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고 그 결과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함으로써 비례대표의 정치적 효과를 증명하였다. 노무현 정부 이래 비례대표제는 극심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도되었는데, 2004년의 경우 영원한 소수파인 노동계급이 장내에 진입하는 수혜를 누렸다. 유럽의 경우 비례대표제의 정치적 효과는 계급, 지역, 종족, 이념갈등을 완화하고 권력분점과 타협의 정치를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경우도 비례대표제는 지역과 계급 갈등뿐 아니라 남북 문제를 둘러싼 이념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어야 할 선거제도이다.

이제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을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조건하에서 자유한국당은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20대 제2기 국회 지도부는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시작으로 해서 이러한 선거제도와 온건 다당체제, 분권형 헌정구조가 잘 조응하는 합의주의형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개혁을 주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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