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김용균

2018.12.13 20:47 입력 2018.12.13 20:53 수정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산업재해로 숨진 문송면의 관을 앞에 두고 시위하는 노동자들. 1988년 7월, 경향신문사

산업재해로 숨진 문송면의 관을 앞에 두고 시위하는 노동자들. 1988년 7월, 경향신문사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래요/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한 개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

가수 김민기가 1978년 발표한 노동굿 앨범 <공장의 불빛>에 나오는 가사의 일부다.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재해가 비일비재했던 1970년대 ‘산업재해 왕국’의 열악한 환경이 담겼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손가락을 잃어버린 탓인지 한국은 손가락을 이어 붙이는 수지접합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잃어버린 건 손가락만이 아니다.

1988년 2월, 열다섯의 어린 노동자 문송면은 불면증과 두통이 심해 병원에 입원했다. 검사 결과는 수은 중독 및 유기용제 중독. 그는 2개월가량 회사에서 최소한의 보호구도 없이 온도계와 압력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했다. 장기간 입원 동안 체중이 14㎏이나 빠지고 극심한 전신 통증에 시달렸던 그는 7월2일에 세상을 떠났다.

2018년 12월, 스물넷의 청년 노동자 김용균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야간 근무를 했다. 컨베이어 벨트 구석에 낀 석탄을 제거하다가 기계에 몸이 끼었다. 새벽에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한 그는 목숨을 잃고 다섯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견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현주소는 우리가 얻고 이뤄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리고 방치한 것들이 말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손가락과 죽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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