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부터 ‘부동산 공시제’ 도입을

2019.07.07 20:50 입력 2019.07.07 20:51 수정

지난 3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59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투자 부동산은 장부가액 기준으로 약 40조원이나 된다. 4월10일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5대 재벌그룹의 2017년 말 기준 토지자산 장부가액은 75.4조원으로 2007년 23.9조원보다 3.2배나 증가했다. 공시지가 또는 시세로 집계할 경우, 월등히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 기간 5대 재벌 전체 계열사 수는 2007년 227개사에서 2017년 369개사로 142개사가 증가했는데, 제조업은 32개사인 반면, 비제조업이 110개사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계열사 업종을 보면 건설과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계열사가 2013년 13개사에서 2017년 41개사로 3.2배나 증가하여, 사실상 가장 많이 늘었다. 이 수치는 재벌들이 제조업보다는 경제력과 유통망을 활용하여, 보다 손쉬운 비제조업 쪽으로 많이 확장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부동산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NGO 발언대]재벌기업부터 ‘부동산 공시제’ 도입을

과거 노태우 정부 때까지는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와 과도한 부동산 보유를 막으려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선 중과세하고, 여신관리규정으로 차입금 상환 또는 매각을 하도록 했다. 이 같은 강력 규제들은 지금 다 사라지고, 환수장치인 토지 보유세도 매우 낮다. 이러다 보니 재벌들은 집중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계속 부동산을 늘려나가고, 소위 알짜 땅까지 대다수 보유하고 있다. 재벌기업들은 토지자산을 취득한 후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자산재평가를 통해 기업 전체 자산의 가치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재벌들이 본연의 주력사업들은 등한시하고, 몸집 불리기에 몰두한 지난 수십년간 산업경쟁력은 약화되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자산과 소득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재벌들의 무분별한 부동산 자산 증식을 감시할 수 있는 자료가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외에는 전무하다. 공시된 자료도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토지자산과 투자부동산 전체의 장부가액만 알 수 있어, 정확한 자산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맹점도 있다. 이러다 보니 주주와 투자자들의 판단까지 흐리게 되고, 투명경영 차원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2011년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기 이전에는 일반회계기준에 따라 기업별 부동산자산에 대한 장부가액과 함께 보유 부동산 전체 면적과 공시지가는 공시되었었다. 어떤 측면에서 국제회계기준이 부동산을 아끼는 재벌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땅이 비생산적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재벌기업들의 부동산 공시제도부터 도입해야 한다. 투명한 공시로 부동산 투기와 땅을 이용한 세습을 감시하고,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 기업회계기준 변경이 어렵다면,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최소한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별도로 공시하도록 하면 된다. 보유 부동산의 건별 주소와 면적, 장부가액, 공시지가 정도는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 다음으로 비업무용 토지도 지자체 또는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에서 주기적으로 발표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격차의 심화는 땅과 집이라는 공공재와 필수재를 과도한 이윤추구 목적으로 사용한 이유도 크다. 우리나라에 재벌 부동산 공시제도가 도입된다면, 유한한 땅이 보다 생산적인 곳에 활용될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