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꺼져 가는가!

2019.10.01 20:56 입력 2019.10.01 20:57 수정
이대근 논설고문

어느 때보다 정치가 필요한 지금, 정치가 없다. 정치 부재의 공간은 조국과 윤석열, 그리고 두 사람 간 대결에 뛰어든 유명인사들과 그들의 팬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 배후의성난 두 집단도 정치 부재를 증명한다. 광화문 집회에서 조국 퇴진을 외치는 이들과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촉구하는 이들, 조국 사퇴 성명을 낸 교수들과 검찰개혁·조국 지지 성명을 낸 교수들. 이들이야말로 정당을 대체해 지지와 반대를 조직하고 여론을 이끄는 진정한 정치적 실체다.

[이대근 칼럼]촛불은 꺼져 가는가!

정치는 조국·윤석열 대치 국면을 풀 역량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집권당은 지난 주말 서초동 집회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 간 대결의 결과가 나오기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보다 문제 해결 수단을 많이 갖고도 불확실성 속에 함께 휩쓸려 들어갔다. 민주당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이유가 있다. 당이 중구난방 나서고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분열하면 총선 필패라는 열린우리당 트라우마가 그 하나다. 하지만 다양한 논의를 허용치 않는 당내 분위기,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의 독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분열 회피 강박증은 당의 경직을 초래하고, 경직된 당은 위기가 닥쳤을 때 효과적 대응을 방해한다. 조국 사태 악화가 입증한다.

민주당이 방치한 다른 이유는 총선까지 여유가 있다는 안이함이다. 민주당 계획대로라면 시민은 조국 문제로 크게 낙담했다는 사실을 총선 앞에서 싹 잊어야 한다. 그리고 집권세력을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건 황교안의 머리카락이 자라면 갑자기 고분고분해져 장외 투쟁을 접고 대화할 거라고 믿는 것과 같다.

조·윤 대결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 관계만 보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망하는 제로섬 게임이고, 나라 전체로서는 마이너스섬 게임이다. 이 대결에서 조국이 살아 돌아온들 더 이상 과거의 조국은 아니다. 상처투성이 조국, 껍데기 조국이다. 그때의 시민 역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던 시민이 아니라, 깊은 실망감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시민일 것이다.

다수 시민이 선출하고 받쳐주던 촛불정부가 이제는 핵심 지지층의 강력한 목소리에 의지하고 있다. 위기 신호다. 권력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초동 집회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조국은 13% 지지율로 대선주자 3위를 기록했다. 집권세력은 반색했다. 그리고 더 기다릴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지 갑자기 공세적 태도로 변했다. 대통령도 검찰을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검찰 권력은 일정한 한계에 직면했다. 청와대-당-지지자가 결속해 있는 한 권력은 공고할 것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지자 결집 현상은 진영 대결을 본격화하면서 대결 규모가 커졌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위임받은 촛불개혁을 위해 다수가 결집한 것이 아니다.

이런 대결에서는 우리 편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순수한’ 경쟁심리가 발동한다. 이 국면에서 도덕과 가치는 사치다. 최소한의 명분만 필요하다. 그게 검찰개혁론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이 촛불의제 가운데 최우선 순위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이미 국회로 넘어갔다. 검찰개혁 과제로 남은 게 별로 없다. 정부가 제시한 것도 수사관행·조직문화의 개선, 특수부 축소뿐이다. 조국 맞춤형 검찰개혁론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법무부의 가상통화 불허와 같이 젊은층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생기면 신속하게 설득과 사과, 불허 취소로 반응했다. 각종 재난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인사청문회 때 공직 후보자의 불법이 아니어도 도덕적 하자가 있거나, 여론이 나쁘면 임명하지 않았다. 시민 다수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촛불정부라면 폭넓은 지지와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자본, 상징자본, 사회적 관심, 땀, 시간과 같은 자원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불공정의 늪에 빠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쓰여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도 이미 많은 자원이 소진됐고, 그나마 남은 것들은 조국을 위해 다 써버렸다. 공공재인 촛불자원의 낭비이자 촛불의 사유화다. 문 대통령이 다수의 마음을 잡기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 한 결과다. 그 때문에 개혁세력도 분열 중이다. 이해할 수 없다. 촛불대의 앞에 조국은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을 위한 촛불은 없었다. 촛불정부 탄생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배신감을 달랠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 위임한 촛불개혁의 시효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다수파 전략을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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