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블랙홀’의 탈출구

2019.10.01 21:03 입력 2019.10.01 21:08 수정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의혹을 수사하는 특수부 검사 30여명 중 어느 누구도 현재 검찰이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고발이 들어온 사건인 데다,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하는 게 검찰이 할 일이다. 특히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거악을 척결하는 것은 검찰의 최대 존재 이유이다. 현 정권 최고 실세로 거론되는 조 장관의 의혹 규명은 어떠한 외압도 견뎌야 할 사명으로 여겼을 것이다.

[정동길에서]‘조국 블랙홀’의 탈출구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검찰이 정치의 과정에 뛰어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극대화된 건 사실이다. 인사청문회가 끝날 즈음 늦은 밤 조 장관(당시 후보자)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 장관에 대한 수사는 대한민국 이슈의 대부분을 ‘조국 블랙홀’로 끌어들였다. 한 현역 원로 정치인은 “이대로라면 다음 총선의 공천은 검찰의 손에 달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이라는 고전적 개념이 작동한다. 그러나 점차 사법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검찰과 법원은 정치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도 침투해 있다. 개인 간 금전분쟁, 예술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까지 “법대로”를 외친다. 경향신문이 ‘만사법통에 기댄 사회’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리스토크라시(juristocracy), 즉 사법통치 현상을 진단하고 있는 이유다.

“인구가 한국의 2.5배인 일본에도 특수부가 전국에 3곳밖에 없고 그나마 뇌물과 같은 전통적인 범죄만 수사한다. 공무원 직권남용이나 경영상 배임 같은 애매한 영역은 손대지 않는다. 우리는 특수부가 이렇게 크니 고등학생 자기소개서까지 검증한다. 최종적으로 혐의가 밝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사권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 자체로 정치에 영향을 준다.”(금태섭 의원)

한국에서 법치주의는 강압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일쑤였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처럼 법의 잣대가 공평하지도 않았다. 법과 공권력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소하는 정치의 과정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검찰개혁 방안으로 추진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제도적 장치일 뿐 그 자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데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결국 자기 뜻을 관철하거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권은 법과 공권력에 기댈 것이다. 이는 다시 검찰과 법원의 비대화로 이어진다. 민주적 다양성을 넓게 인정하는 사회적 노력이 기반이 돼야 한다.

‘부모 찬스’에 의한 특권의 대물림도 조국 사태가 확인시켜준 우리 사회 획일성의 단면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논문의 저자로 등재되고, 스펙을 관리해 대학(원) 진학의 지름길로 삼은 것이 조 장관 일가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좋은 대학을 가고(이제는 좋은 고등학교와 학원을 가야 한다), 의사와 판검사 등 ‘사자 직업’을 갖기 위한 성공가도의 경로도 좁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길목을 점차 기득권과 부유층이 차지하면서 흙수저로서는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두고 살아야 한다.

이 같은 불공정과 사회적 낭비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지만 지금 논의의 해법조차 자칫 획일적으로 흘러갈 분위기다. 교육제도 개선 요구를 틈타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다. 최근 학생부 전형에 비해 수능은 당사자가 노력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험을 공정성의 유일한 잣대로 삼는 분위기가 반영되는 셈이다. 그러나 수능 점수가 잘 나오는 지역과 고교가 구분된다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상위 계층일수록 정시를 선호하고, 정시는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학생부 전형이 도입된 것은 문제풀이에 몰두하도록 변질된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모두 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문제를 풀고, 여기서 받은 점수차로 우열을 정하는 게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시험만 유일한 평가의 잣대가 되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재능과 가치의 공존이라는 싹을 틔울 수 없다. ‘시험 만능사회’는 ‘승자’의 영예를 주고, 통과하지 못하면 ‘패자’의 상실감을 주는 서열사회를 공고히 할 뿐이다. 그 정점에 사법시험이 있었고, 판검사에 의한 사법 통치시대가 강화되고 있다.

지금은 하나의 잣대, 하나의 진실, 하나의 의견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평가의 잣대는 공정하고 다양해야 한다. 진실은 경합할 수 있고,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존중되어야 하고 타협할 수 있다는 포용성이 필요한 때다. 일본과의 경제전쟁,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경제와 체감되지 않는 일자리 등 우리의 숱한 고민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조국 현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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