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맞서는 길

2019.11.21 21:17 입력 2019.11.21 21:18 수정

여성복업계 상품기획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과거 데이터가 안 통하기 때문이란다. 최근 2년간 기존 틀과 전년 인기상품 데이터에 의지하는 기획이 시장에서 더 이상 안 먹혀 난리란다. 연간 사업계획대로 움직이기엔 변수도 많고 시즌 구분도 불분명해져서 지금 당장 필요한 아이템을 발굴하느라 매월 분주하다고 한다. 비단 여성복 업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녹색세상]기후변화에 맞서는 길

2006년도 겨울 무렵 공영방송 9시 뉴스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구가 더워져 물에 잠기고 태풍 같은 재난도 많아진다는데, 과연 사실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지난 20세기 동안 4배 증가한 인구가 20세기 100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총량은 그 이전 1000년 동안 사용했던 에너지의 10배나 증가했다. 문명은 에너지 소비와 동의어다. 소비의 와중에 20세기에 환경은 집중적으로 파괴됐다고 J R 맥닐의 <20세기 환경의 역사>를 인용해 답했다. 기자의 얼굴엔 짜증이 묻어났다. “석유석탄 에너지의 부산물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를 더 덥게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나무가 한반도에서 사라지고, 바닷속은 아열대 어종으로 바뀌어서 밥상이…”라고 열을 내며 이야기하는데 기자가 마이크를 껐다. 기자는 “그만합시다. 아니 환경운동이 중요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과장해가지고 현실성이 있겠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날 뉴스엔 온난화로 재난이 많아진다는 짧은 멘트만 방송되고 말았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지난 11월15일 1966년 이래 최악의 홍수로 수위가 1.54m에 달하면서 도시의 70%가 물에 잠겼다. 공교롭게도 마침 그때 베네치아 지방 시의원들은 페로 피니 궁에서 기후 비상사태에 대해 토론을 마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안을 부결시켰다. 가디안의 보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고, 디젤 버스를 오염이 적은 차량으로 교체하며, 난로를 폐기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들을 포함하는 기후변화 대처안이 부결된 지 몇 분 후의 물난리라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제 기후 재난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는 게 으스스할 뿐이다.

2018년 세인트 마크 바실리카성당이 물에 잠겼을 때 수리비가 약 220만유로로 추산됐다. 이번엔 오페라 하우스인 테아트로 라 페니스도 파손됐고 무라노 섬의 성당도 심하게 훼손됐다 하니 천문학적 액수가 들 것이다. 여기뿐일까. 지난 11월13일은 캘리포니아 산불 1주기가 되는 날이다. 85명 사망으로 청구된 보험금만 약 13조원에 달한다.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연방준비제도에서는 기후변화로 지난 5년간 미국 경제에 580조원의 손실이 있었고 방치하다간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 연구기관인 EIU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성장률이 기후변화로 향후 30년간 3% 하락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제 기후변화는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이 위협적 현실에 과학자들이 지난 11월6일 행동에 나섰다. 153개국 1만1000여명의 과학자들은 즉시 기후위기에 대응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막대한 고통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미 닥친 기후위기가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가속화하고 있다”며 “환경과 인류의 운명에 대한 위협이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EU에서는 2020년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21%의 예산을 책정했고, 이낙연 총리도 제5차 국토종합계획안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상품이 시장의 지지를 받으면 기업은 돈을 번다. 이 세금으로 정부는 많은 활동을 펼친다. 세상에 유익한 화두를 던지고, 위협을 미리 알리고, 인식을 바꿔온 환경단체는 어떤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성장과 상관없이 여전히 광야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제 후원의밤 시즌이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길,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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