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서울대 때리기

2019.12.11 20:51 입력 2019.12.11 23:16 수정

세계 대학들을 비교하는 ‘QS평가’와 ‘THE평가’는 교육, 연구, 국제화 등의 자료와 설문조사를 집계하여 이루어진다. 영미와 서구 대학들에 편파적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다. 두 기관이 발표한 2020년 순위에서 서울대는 QS평가 37위, THE평가 64위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서울대가 국내 최고 대학이지만 ‘글로벌 무대에선 이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서울대 비대(肥大)화에서 찾기도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원들의 밥그릇이나 키우고 인사와 행정이 방만하다는 비판이다. 사립대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서울대만 특혜를 누려왔고 특권의식과 순혈주의 같은 구태가 혁신을 가로막는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은 우리 고등교육 문제의 핵심에서 크게 빗나간 엉뚱한 진단이다. 서울대가 재정과 조직을 축소하고 인건비를 감축하며 교수와 행정인력도 줄여야 할 것처럼 이해되는데 이건 세계 일류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길이다.

[경제직필]엉뚱한 서울대 때리기

우리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비정상적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내총생산 대비) 전체 지출규모는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으나 학생 일인당 지출은 평균의 60%에도 못 미친다. 고등교육 지출에서 개인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최상위권이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총 고등교육 지출규모는 크나 내실 있는 교육이 어렵고 대학원 교육과 연구에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개인지출비중이 높아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취약하고 불공정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구조가 서울대와 해외 명문대들 간의 예산격차로 나타난다. 서울대 예산은 도쿄대나 싱가포르국립대의 절반 수준, 하버드대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격차가 세계대학순위에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S평가에서 도쿄대, 싱가포르국립대, 하버드대는 각각 22위, 11위, 3위, THE평가에서는 각각 36위, 25위, 7위를 기록했다. 우리보다 더 많은 예산을 쓰지만 일본의 대표적 명문, 도쿄대와 교토대(QS 33위, THE 65위)도 북미 및 서구 대학들과 비교하면 많이 뒤처진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국제경쟁력 있는 명문대학이 필요하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어렵다. 대학 경쟁력의 핵심 근육은 단연 대학원 교육과 연구역량이다. 연구중심 대학과 학부대학을 체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나눠 쓰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수많은 고등교육 재정지출 사업들을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대학원 교육과 연구역량 강화에 충분한 재정투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미래를 책임질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생계와 주거 문제 때문에 곤란해지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본은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10% 이상 늘려 43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도 부족하면 예산을 늘려서라도 연구경쟁력 확보에 투자해야 한다.

서울대를 비롯한 연구중심 대학들은 공무원, 법조인,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입시제도와 학부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수능 성적, 출신 고교유형, 내신등급같이 ‘보이는 능력’만이 아니라 ‘가려진 잠재력’을 발굴하고 키우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게 서울대와 같은 연구중심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공신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많은 해외 명문대들이 가려진 잠재력을 발굴하는 입시제도를 운영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차별철폐조치에 따라 흑인과 소수집단에 수능 총점의 15%에 해당하는 점수를 올리는 것과 동일 효과를 갖는 입시제도를 운영했다. 흑인의 경우, 주요 명문대 합격률이 백인의 2배에 가깝다. 서울대의 현행 지역균형선발, 기회균형선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감한 조치다. 이를 시행한 하버드, MIT 같은 대학들의 명성은 추락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아졌다. 서울대 학생성적 자료에서 지역균형선발 입학생들이 저학년에는 학업성취도가 뒤처지나 3~4학년에 접어들면 격차가 없어지거나 오히려 역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행 지역균형선발이 학생 잠재력 평가에서 다른 선발전형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문계만이라도 현행 수시를 모두 지역균형과 기회균형 선발로 대체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수년 정치사적 격변 속에서 서울대가 키워낸 엘리트들이 기득권 세력의 부정한 지대추구를 돕고, 권력과 이권의 톱니바퀴 같은 역할로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을 볼 때마다 서울대가 사회적 책임은커녕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처럼 비쳐 안타깝다. 대학교육이 계층사다리 역할을 못하는 현실에서 더 큰 사회적 책임이 서울대에 지워져있다. 길이 명확한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스스로 혁신과 공정을 위해 과감히 변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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