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 관전법

2019.12.04 20:49 입력 2019.12.04 20:57 수정

연말이 다가오면서 신문의 인사 동정란 크기가 커지고 있다. 신규로 선임되는 기업 임원들에 대한 특징과 임명 배경 등이 자세히 보도되고 있다. 올해는 경기 부진에 따른 영업실적 악화와 세대교체 분위기 등으로 인사 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위기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해결하니 위기에 처한 기업이 사람을 교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관성적으로 시행되던 연말 인사를 지양하고 이제는 과거와 다른 잣대로 접근해야 할 듯하다.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리더를 골라야 하는 이유를 되짚어 보자.

[경제직필]연말 인사 관전법

먼저 현재의 경영 여건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기반 위에 서 있다. 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모든 산업이 공급과잉이고, 부채 수준은 국가 구분 없이 사상 최고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기반이었던 세계는 약육강식과 보호주의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가 화학적 변혁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저명한 컨설팅 회사(PWC)가 미국 경영자에게 2019년에 예상되는 경영 위협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과도한 규제, 무역전쟁, 포퓰리즘, 사이버테러 등 경제 외적인 불확실성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한국의 상황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혼돈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의 거대한 전환으로 인정하고 이런 인식을 갖춘 경영자를 임명해야 한다. 단순히 숫자로 나타나는 경영 실적으로만 경영자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기업이 속한 산업과 경영 여건 등의 근본적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

두번째 관전 포인트는 세대교체 문제다. 정치적 차원에서 논의되던 세대교체가 최근에는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대기업들은 거의 3세 경영이 정착되고 있다. 젊은 3세 오너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자신의 부친과 경영했던 선배 경영자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주로 50대 후반의 경영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영의 ‘고수(高手)’들인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신상과 기업문화를 꿰차고 있다. 오너의 불편함 때문에 노련한 경영자가 퇴진하는지 여부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너의 경영 능력도 사회적으로 검증이 필요하다.

세번째 중요한 점은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팀장, 본부장 등 중간관리자를 어떤 사람으로 임명하느냐다. 중간관리자는 조직의 목표를 현장에서 조직원들과 함께 수행하는 동시에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는 주체다. 한국의 고성장 역사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중간관리자의 헌신과 노력이 바탕이 되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가장 역동적(dynamic)이었던 한국의 중간관리자들이 자신감을 잃고 뒷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특수성 때문이다. 청탁금지법, 52시간 근로, 미투 운동, 괴롭힘 방지법 등이 별다른 준비 없이 단기간에 도입되면서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새로 입사한 밀레니얼 직원들과는 소통이 어렵고, 4차 산업혁명으로 자신의 모든 언행이 기록되고 노출되니 중간관리자들은 경영진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새로 임명되는 중간관리자들은 새로운 리더십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수행할 능력뿐 아니라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사내 정치력으로 승진하는 팀장, 본부장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고위 경영진은 중간관리자의 육성과 변화에 맞는 기업문화를 만들 만한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최근 한국 기업의 진짜 위기는 위기를 돌파할 주역인 중간관리자의 리더십 상실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요청된다.

인사 관리는 제로섬게임 성격이 강하다. 누군가 승진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로섬게임적인 인사 관리의 특징 때문에 학연, 지연, 혈연이 21세기에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종교적 인연을 이용하는 종연(宗椽)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존 그 자체가 중요할 정도의 대전환기다. 패거리문화를 기반으로 인사를 할 정도로 한가한 시기가 아니다.

결국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인식에 달려있다. 과거의 성공 신화가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리더라면 과감히 솎아내야 한다. 반면 새로운 전환을 기업에 접목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중용해야 한다. 그래서 수축사회로의 진입이 확연해진 올해 인사는 가장 파격적이고 정교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민간 기업뿐 아니라 공공 조직이나 시민단체까지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훌륭한 리더라면 능히 극복 가능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형 리더인가? 미래형 리더인가? 올 인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진짜 리더를 선별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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