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디트의 죽음

2020.03.04 20:32 입력 2020.03.04 20:40 수정

몇 년 전 지상파 방송국과 최저임금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는 청년 한명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가 꺼낸 카메라엔 방송국 마크가 찍혀있지 않았다. 외주사 프리랜서 직원이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노동자들이 받을 피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걸 찍는 방송노동자는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장님이었다.

[직설]엔딩크레디트의 죽음

인터뷰는 이야기가 되어, 방송국 비정규직 문제로 이어졌다. 라이더유니온을 시작한 이후에는 특고신분의 라이더노동환경 실태에 대해 찍고 싶어 하는 방송국 PD와 카메라맨들을 자주 만났다. 하루는 촬영이 밤 10시가 넘어가 슬슬 짜증이 났다. “지금부터 야간출연료 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라고 농담을 던졌더니 “우리는 야간수당 못 받는 프리랜서예요”라고 받았다.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돌려 자신을 찍으면 거기에 바로 일 시킬 땐 직원, 문제 생기면 사장님인 프리랜서의 애환이 있었다.

퇴근시간 없는 NGO 활동가의 생활을 촬영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그들에게 미안했다가, 나중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을 찍어야 한다고 능청을 떨었다. PD의 잠긴 눈, 카메라맨의 손목보호대, 막내작가의 갈라진 목소리, 차 안에서 잠든 막내스태프의 돌돌 말린 등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부터 아픈 곳이 있으면 매일매일 기록하세요. 나중에 산재 상담해드릴게요.” “노조 만들고 싶으면 연락주세요. 컨설팅해드릴게요.” “나도 당신들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네요.”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뱉었던 읊조림이었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지만 보도하지 못했다. 그건 내 일이 아니었고, 그들의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이재학 PD가 죽었다. 청주방송국 PD였던 고인은 14년 동안 오르지 않은 임금의 인상을 요구했다. 그의 한 달 수입은 160만원이었다. 후배들인 조연출과 방송작가, 촬영스태프들의 처우는 더 열악하니 개선해 달라고 했다. 방송 만들 때 필요한 적정인원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송국 회의에서 튀어나온 그의 말은 그야말로 수습이 불가능한 ‘방송 사고’였다. 회사는 그 자리에서 일을 그만두라고 통보했다. 이재학의 건당 인생에서 건이 사라졌다. 부당해고라고 생각한 고인은 직장갑질119에 도움을 청했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나섰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면 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일 뿐이다.

방송국에서 그의 별명은 라꾸라꾸였다. 회사에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숙식을 해결하며 정규직 PD의 두 배 이상의 일을 했다.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다 과로로 사망한 조연출도 근로자판결을 받았다. 동료들도 형식은 프리랜서지만 회사의 업무지시를 받으며 근로자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방송국은 증언을 해준 동료 중 한명을 회유해서 진술을 번복시켰고, 노무법인에 의뢰한 근로자성 검토 자료는 숨겼다.

법원은 방송국노동자들이 필요하면 펴고 필요 없으면 접어버려도 되는 라꾸라꾸라고 판결했다. 이재학이 만든 프로그램은 청주방송의 것이었지만,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방송국 사람이 아니었다.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2020년 2월4일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기록이다.

타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 방송노동자들의 존재가 유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엔딩크레디트. 사람들이 영화관을 나가거나, TV채널을 돌리는 찰나의 순간에 그들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제 방송이 끝날 때까지 TV를 보더라도 이재학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 그의 얼굴과 그의 주장이 엔딩크레디트가 아니라 TV화면의 한가운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바랐던 ‘노동자’라는 이름이 판결문과, 수많은 비정규직 언론종사자들 앞에 붙을 수 있기를 바란다. TV는 아니지만 신문의 한쪽에 ‘언론노동자 이재학’을 새기는 이유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