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민주주의

2020.03.15 22:26 입력 2020.03.18 10:21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이범준의 저스티스]코로나19와 민주주의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 입학해 헌법을 배우고 있다. 이 학교 유학생이 4500명을 넘지만 누가 유학생인지 금세 알아채기가 어렵다. 중국인이 유학생의 58.3%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9.1%인 한국인인데 외양이 일본인과 비슷하고 일본말을 해서다. 그러다 올해 초 중국인을 구별하게 됐다. 중국인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유학생을 위한 일본어 논문 쓰기 특강에 들어갔는데 중국인 학생은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일본에는 감염자가 거의 없던 때인데도 고집스러웠다. 다만 언론에서는 매일 중국 상황을 보도했고, 학교에서도 주의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중국으로 귀국하는 학생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도록 주의하세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내용이 거칠어졌다. 졸업식에 가족을 부르는 문제, 해외여행 사실을 알리는 절차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격히 늘었다. 나도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도쿄에 온 뒤로 서울에 간 적 없지만 그러는 편이 마음 편했다. 그제야 중국인 학생들이 두려워한 상대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소리 없이 퍼질지 모를 차별이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중국인 학생들은 방학 동안 고향에 가지 않았는데도 마스크를 썼다. 그동안 중국인 학생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꼈다. 대부분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자라 쉽게 주눅 들지 않고, 일본인 학생들도 최고 대학 동문이라는 동질감이 더 강한 듯했다. 그런 자부심도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허물어졌다. 마스크는 내가 너를 숙주로 삼을 생각이 없다는 증명이 되어주었다.

내가 공부하는 헌법은 제도적인 차별을 금지하거나 정당화하는 문서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게 원칙이다. 남자와 여자는 같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과 갖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공무원 선발에서 남자와 여자는 차별받지 않지만, 장애가 있는 이와 없는 이는 차별된다. 특별한 기회를 장애인에게 주어야 한다. 여기에서 차별의 주체는 국가다. 사인이 사인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이 막지 못한다. 법률은 사인을 규제하지만, 헌법은 국가를 규제한다. 성소수자의 거주를 막는 인근 주민들을 헌법으로 막지 못한다. 당초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사적인 분쟁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의지는 법률과 공무(公務)로 드러난다. 그래서 헌재가 심판하는 대상도 법률과 공무이다. 헌법재판은 국가를 심판하는 과정이다.

일본은 조용한 나라다. 언론도 약하고 소송도 적다.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최고재판소도 소극적이다. 1947년 설립된 뒤로 위헌결정을 22건밖에 안 했다. 1988년에 만들어진 한국 헌법재판소는 법률에만 793차례 위헌결정을 내렸다. 사법소극주의 입장인 최고재판소가 2015년 민법 조항에 처음 위헌을 결정한 사례가 혼외자(婚外子) 차별 규정이다(사적 성격이 강한 민법 조항에 대한 위헌은 한국에서도 드물다). 자기 의지와 무관한 혼외자라는 처지 때문에, 상속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재까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정치제도는 입헌(立憲)민주주의다. 국민 다수의 결정이라도 헌법에 바탕해 뒤집고 무효로 만든다. 다수가 반드시 옳지는 않으며 더러는 위험하다는 역사 경험에서 나왔다. 일본에서도 민주주의 열기가 가장 뜨겁던 다이쇼데모크라시 시절, 조선인 대학살이 벌어졌다.

1877년 개교한 도쿄대학이 속한 행정구역이 분쿄구(文京區)이다. 1947년 도쿄대학을 염두에 두고 학문(文)의 중심(京)이란 뜻으로 지었다. 내가 사는 기숙사도 이곳에 있는데 21명이 하나의 생활단위다. 학생들이 세계와 쉽게 교류하도록 이렇게 설계했다고 한다. 일본 후쿠오카, 중국 상하이, 독일 아헨 등에서 왔다. 공동으로 주방, 욕실, 화장실, 거실을 쓴다. 학교보다 훨씬 밀접하고 밀폐된 공간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어차피 누군가 감염되면 함께 걸리는 것이다. 코로나19 운명 공동체다. 감기 기운이 있다며 셔츠를 석 장 껴입은 친구가 있었는데 진심으로 그가 걱정되었다. 이렇게 31개국 학생들이 이 기숙사에 산다. 도쿄 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하다지만 그에 버금가는 공간이 이곳이다. 경험 공동체, 생활 공동체는 국적 공동체와 학력 공동체를 뛰어넘는다.

일본 사회의 배제는 알아채기 힘들 만큼 조용하다. 한국의 배제가 거칠고 공격적인 것과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16년 과거 한센병 환자가 당사자인 재판을 격리된 요양소에서 해온 것을 사과했다.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고 환자의 인격과 존엄에 상처를 준 것을 깊이 반성하고 사죄한다.” 이듬해 한국 대법원도 한센병 환자들에게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국가의 행동은 불법이라고 했다. 차별은 제도이지만 그 바탕은 마음이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혐오가 공포를 가장하여 차별을 요구한다. 혼외자로 태어나거나,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 그리고 지금 감염병에 걸리는 것도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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