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들이 즐기는 소리와 영상

2020.04.07 20:58 입력 2020.04.07 23:41 수정

[창작의 미래]바쁜 사람들이 즐기는 소리와 영상

소리 대 영상, 어느 쪽이 더 사랑받나. 수십년의 달리기 시합을 되짚어 보자. 지난주 “오래전 ‘이날’”에 소개된 경향신문의 옛 기사가 흥미로웠다. 1970년대 후반부터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며 한동안 영상이 앞서나간다. 그런데 1990년 3월30일자 경향신문은 “라디오의 인기가 되살아난다”고 보도했다. 그 무렵 ‘손수운전자’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그 뒤로 30년은 엎치락뒤치락이다. MP3플레이어와 팟캐스트(소리)가 유행했고, 스마트폰과 유튜브(영상)가 인기이며, 인공지능 스피커(소리)가 관심을 끈다.

[창작의 미래]바쁜 사람들이 즐기는 소리와 영상

소리냐 영상이냐, 대중없어 보이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다. 우리가 갈수록 바빠진다는 이야기를 나는 하고 싶다. 옛날에 컬러텔레비전이란 일가족이 의식을 치르듯 모여 앉아 시청하는 물건이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일과 중 따로 마련한 집이 많았다. 그 후에 어찌 되었나. 우리는 운전하는 시간에 라디오를 들었고, 일하는 시간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차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유튜브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를 한다. 소리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내내 우리는 뭔가 할 일이 있다.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모컨이 보급되기 전에는 가족 중 ‘서열’이 낮은 사람이 달려가 가부장의 취향에 맞춰 채널을 돌리곤 했다. 만화영화를 보고 싶은데 아빠 때문에 프로야구를 틀어야 했다는 슬픈 경험담을 종종 듣는다. 지금은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으니 이런 점은 좋다. 바쁜 중에도 소리나 영상을 즐긴다는 점도 괜찮다. 하지만 너무 바쁘게 사는 점은 문제다. 저녁 무렵이면 힘이 쏙 빠진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사람은 한줄한줄 주석을 찾아가며 책과 씨름하기 어렵다. 그럴 시간도 힘도 없다. 요즘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는 추세가 있다. 소리는 백색소음, 영상은 ASMR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풀벌레가 찌르륵찌르륵, 시냇물이 졸졸, 모닥불이 자작자작, 보일러가 웅웅, 도미노가 차르르, 슬라임이 꿀렁꿀렁. 넋 놓은 채 틀어놓으라는 소리와 영상이다. 외국에선 새티스파잉 비디오(satisfying video, 기분 좋아지는 영상)라고도 부른다. 유튜브 소개를 보니 공부할 때 집중을 돕고 잠잘 때 푹 자게 해준다고 돼 있었다. 요즘 우리가 어찌나 바쁜지, 책을 읽을 때나 잠을 잘 때에야 영상을 즐길 틈이 난다는 얘기 같다. 나는 허허 웃었다. 물론 나도 새티스파잉 비디오의 팬이다. 이래 봬도 나 역시 바쁜 사람인 것이다. 바쁘다고 옛날보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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