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회도 불면서 먹어라

2020.04.27 20:38 입력 2020.04.27 20:42 수정
박래용 논설위원

2000년 전 폼페이 사람들은 베수비오 화산을 끼고 살면서도 희희낙락하다 하루아침에 4m 두께의 화산재에 파묻혔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슨 일이 닥쳤는지 잘 모르는 모습 그대로 발견됐다. 미래통합당이 딱 그 짝이다. 민심은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박래용칼럼]민주당, 회도 불면서 먹어라

지구에 거대한 멸종이 일어난 건 온난화 때문이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소멸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50억년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꼽는다. 인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가장 무지한 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여러 차례 보수야당이 달라지지 않으면 화산재에 묻히고,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무지한 종이 될 것이라고 했다. 통합당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선거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4·15 대첩을 기다리고 있었다.

21대 총선 결과를 놓고 가장 두드러진 의미 하나만 들라면 ‘탄핵의 완성’을 꼽겠다. 황교안은 탄핵된 박근혜 정부에서 2인자를 지낸 ‘탄핵 총리’다. 그는 제대로 된 사죄나 반성 한마디 없이 제1야당 대표에 오르고 총선에 도 출마했다.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親朴)은 친황(親黃)으로 둔갑해 문재인 정부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저주하는 걸로 3년을 지새웠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하더라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하고, 지원할 건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닥치고 공격만 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레드카펫 위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그러다 되레 탄핵 잔당이 타도됐다. 박근혜는 탄핵 이후 통합당, 바른미래당, 우리공화당으로 뿔뿔이 흩어진 보수세력이 빅텐트를 치고 반문 연대를 구축하란 옥중 메시지를 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시민들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그의 아바타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보수(保守)는 지키는 것이다. 뭔가를 지키고자 한다면 변해야 한다고 했다. 30대에 최연소 야당 당수를 맡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말했다. “나는 우리가 젊은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공동의 목적을 가진 나라, 고이 간직하고 살아갈 이상이 있는 나라, 도전에 대비하는 단결된 나라, 국민이 나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노력해주는 것에 바탕을 둔 나라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서구 보수의 젊은 리더들은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한국 보수의 리더들은 돌아가며 시민들의 가슴에 염장을 질렀다.

통합당은 이제 다시 김종인에게 난파선의 키를 맡길 참이다. 10년 새 8번째 비대위다. 비상대책위가 일상이 된 당이다. 여든 살 노정객 김종인은 이번 선거에서 자유당 때 선거 구호인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들고나왔다. 호랑이 담배 피우고 곰이 막걸리를 거르던 때 얘기다. 민심은 되레 보수야당을 갈아엎었다. 정치에서 오류나 실수, 패배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이런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고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지금 보수진영에선 잠룡은커녕 토룡도 안 보인다.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수 없다. 이번 지역구 당선자 84명 중 30대는 1명뿐이다. 보수는 사람을 키우지 않았고 세대교체에도 실패했다.

180석 슈퍼 여당은 두번째 기회를 잡았다. 민주진보세력의 최초 과반 의석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첫번째 기회를 날려 보냈다. 개혁은 시민이 체감하고 환호할 때 성공한다. 열린우리당이 밀어붙였던 4대 개혁입법은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시민들은 느꼈다. 꿈을 이뤄내는 게 정치다.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사이 금쪽같은 시간이, 기회가, 에너지가 강물처럼 흘러갔다.

그로부터 16년 만이다. 흐르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데 민심의 강은 다시 진보세력에 기회를 주었다. 지금 여당에 필요한 것은 겸손과 실력이다. 주역은 64개의 괘로 길흉을 따지는데, 가장 좋은 괘가 ‘겸(謙)’이다. 겸손할 겸은 말씀 언(言)과 아우를 겸(兼)이 합쳐진 자다. 상대를 배려해서 말하는 게 가장 길하다는 뜻이다. 불에 세게 데어 본 놈은 회도 호호 불면서 먹는다. 민주당은 더 고개를 숙이고, 더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반대보다 기대가 더 무섭다. 개혁 정책은 시민 다수가 지지하는 것만을 추려서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능한 한 청와대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당과 내각이 알아서 굴러가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서 K방역이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듯 K정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어설픈 진보’를 ‘유능한 진보’로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운이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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