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익어가는 닷새 동안

2020.05.10 20:55 입력 2020.05.11 10:50 수정

[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술이 익어가는 닷새 동안

술이란 걸 빚어봤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것도 넉넉히 마시는 걸 좋아하거니와 코로나19 시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 시국에도 술은 사다가 마시면 그만이다. 나는 혼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사람들과 만나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때때로 피로가 쌓이는 일이기도 하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은 쓸쓸한 일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피로를 푸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시절에는 딱히 쓸쓸히 여길 일도 없다. 혼자 술을 마시며 홀로 피로를 푸는 일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을 하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술이 익어가는 닷새 동안

마침 지인에게서 누룩을 얻었다. 누룩이란 게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런 것으로 술이 만들어지고, 그런 술로 사람이 취하기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누룩과 함께 술 빚는 법을 얻어들었고, 집에 와서 어딘가 틀어박혀 있던 단지만 한 항아리를 꺼내 씻었고, 찹쌀을 주문했다. 술이란 것이 넉넉히 빚어져 넉넉히 익어야 할 것이겠으나, 가지고 있는 찜솥이며 항아리며 모든 게 다 조막만 한 것들이라 술밥을 짓다 말고 쌀을 나눠 다시 찌고, 누룩과 물을 섞다 말고 다시 있는 대로 유리병들을 꺼내 옮겨 담고, 그러느라 이게 과연 술이 되기나 하겠는가 싶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효모가 발효도 되기 전에 그만 됐다, 하며 지쳐 나자빠져버릴 것 같았다.

1.5㎏의 누룩을 고두밥 지은 것과 섞어 항아리 하나와 꽃병으로 쓰던 큰 유리병 하나에 담아 발효를 시작했다. 누룩을 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해놓고 하루에 한두 번씩 저어주면 닷새쯤 후에는 술이 되어 있을 거라 했다. 그 닷새가 황홀했다. 술 익는 것이 향기로만 나는 게 아니라 소리로도 나고 눈으로도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부터 저어주는데, 어느 날 아침에는 술항아리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사사사, 사사사사…. 노래하는 것 같았다.

누룩을 얻어 처음 빚어 본 술
어느 날 아침에 ‘사사사사…’
술항아리서 노래하는 소리가
코로나와 싸울 때 혐오는 빼야
다시 한번 마음 가다듬을 시점

난생처음 누룩이란 걸 보고 온갖 잘못된 과정을 거쳐 빚은 내 술이란 것의 맛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술맛을 예찬하려는 게 아니다. 술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술을 몹시 싫어하기도 하니 음주를 예찬하려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술을 그냥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맛있게 마시는 사람도 있고 멋있게 마시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에 가까워서, 그러니까 그냥 마시는 사람에 가까워서 술 한번 빚었다고 뭔가를 예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술이 익어가면서 내는 소리, 그냥 소리도 아니고 향기를 풍기면서 내는 그 소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보골보골이라 하기도 하는 그 소리가 내게는 사사사사, 로 들렸다. 누군가는 기포가 끓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할 그 소리가 내게는 말을 거는 소리처럼 들렸다. 술을 빚어 마시기도 전에 취한 셈이다. 익어가는 술에 홀딱 취해버린 셈이다.

취했으니 주사가 있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 배 반쯤에서 두 배쯤으로 과장되는 것. 기쁨이나 슬픔이나 유쾌함이나 괴로움, 그 모든 것들이 제각각 증폭되는 것. 그러니 술 익는 소리도 과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술 익는 소리가 내게 일깨우는 모든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부터 내게는 이런 소리가 없구나 생각한다면 이건 쓸쓸한 감정의 과장이라 하겠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말을 건네려고 하면 아직 귀를 기울이기는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자아에 대한 과장된 도취쯤이라 하겠다. 다행히 익어가는 술의 취기는 그리 깊지 않다. 주사로 이어지기 전에 끝을 내기로 한다. 항아리에 다시 면보를 덮고 아침 창밖을 내다본다. 봄의 아침은 맑은 햇살과 함께 밝아오고 꽃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색깔들로 피어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소리를 낼 듯이 맑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에 여전히 코로나19는 진행 중이다.

한동안은 시간을 기다려가며 확인하곤 했던 뉴스가 하루 동안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는가였다. 최근 얼마 동안은 하루 동안 확진자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확인하려고 발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마음이 사뭇 두근두근하기까지 했다. 다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을 때, 그걸 상심이라고 해야 할지, 우려라고 해야 할지,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지, 모두의 마음이 다를 바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마음도 코로나와는 관계없는 것의 혐오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싸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인내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앞으로는 세상이 AC(After Corona)와 BC(Before Corona)로 나뉠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신조어에 놀라곤 한다. 정말이지, 어쩌면, 아주아주 긴 싸움이 될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인가 보다. 아직은 끝이 아닌 것이다. 실은 끝의 가까이에도 가지 못한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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