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하나 되기, 프리다이빙

2020.06.08 03:00 입력 2020.06.08 03:03 수정

“심해는 놀랍고 신기한 생물들, 낯선 물고기들과 젤리 같은 공 모양의 생물들을 비롯해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들로 가득했다. 수심 700미터에 접근할 즈음 물은 생각과 달리 검은색이 아니라 아주 탁한 푸른색이었다. … 이곳에선 탐조등이 꺼지고 나면 노란색과 주황색 그리고 빨간색은 머릿속에서조차 자취를 감춰버린다. 사방을 가득 메운 푸른색에 압도되어 다른 색깔들은 생각할 수도 없다.”

김인숙 소설가

김인숙 소설가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네스터의 책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에서 인용한 글이다. 작년 여름에 출간된 이 책을 틈틈이 펼쳐보곤 하는데, 심해의 바닷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프리다이버들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바닷속의 소리와 빛과 색깔들을 전해주는 글의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바닷속을 보고 싶으면 영상으로 보면 그만이다. 이 책에서는 아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드는 프리다이버들이 얼마나 깊이 내려갈 수 있는가만이 아니라 얼마나 바다와 가깝게 밀착할 수 있는가를 역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힘을 빌려 재생하는 바닷속은 훨씬 더 실재에 가까울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고 엿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영상으로 옮겨진 바다 역시 실재는 아니다. 바닷속을 알기 위해서는 그 바다를 느껴야 할 터인데, 우리는 무엇으로 그 깊은 바닷속에서의 호흡과 폐의 압박과 부력과 중력이 전도되는 순간과 무엇보다도 그 순간들의 압도하는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심해를 체험하는 방법은 작가의 바다를 내 머릿속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혹은 내 폐와 심장 속으로. 그것은 놀랍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한계점까지 눈 감고 내려가거나
한편선 향유고래와 눈맞춤 대화
미지의 영역 체험하려는 사람들
2%만 아는 바다 더 깊이 알게 돼
해변 휴가 못 가면 책으로 만나자

뜻밖에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프리다이버들은 바닷속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기록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계점에 내려갈 때까지 눈을 감는다. 시각으로 인해 소요되는 에너지까지 아끼기 위해서이다. 올라올 때도 눈을 감는다. 바닷속에서 한 번도 눈을 뜨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체 왜?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프리다이버들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눈과 코와 귀에서 피를 쏟으며 떠오르는 프리다이버 선수들에 대한 묘사는 경악스럽다. 대체 왜? 다시 한번 묻게 되는 질문이지만, 대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작가는 기록 경쟁이 아니라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도 소개한다. 그들은 향유고래 무리와 함께 유영을 하고, 눈을 맞추고, 심지어는 대화를 한다. 그것 역시 물론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바다의 일부가 된다.

“물속에서 나는 내 몸으로 빛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어요.”

어느 해녀의 말을 인용한 글이다. 그들이야말로 바다의 일부다.

바다는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나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작가에 의하면 우리가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로, 고작 2% 정도라고 한다.

이 미지의 영역을 체험하려는 사람들, 즉 다이버들을 끌어안는 바다의 방식이 놀랍다. 바다는 인간을 받아들이기 위해 인간의 폐활량을 조절하고, 인체의 혈류를 역류시키고, 심장박동을 조절한다. 말하자면 몸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완전히’라고 썼지만, 그 완전함은 글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완전한 자연, 압도적인 감정, 말하자면 사랑, 슬픔, 절망, 환희, 그런 것들은 어떤 단어와 수식어로 표현되어야 ‘완전하게’ 전달될 것인가. 작가로서 그런 것들을 묘사해야 하는 순간에 놓일 때, 나는 늘 실패의 예감을 먼저 안는다. 그저 사랑할 뿐인데 그 사랑을 무엇으로 말하나. 그저 아름다울 뿐인데 그것을 무엇으로 말하나. 그저 파랑일 뿐인데 그 파랑을 무엇으로 말하나.

말이 약간 옆으로 새지만, 얼마 전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서 난데없는 문자를 받았다. 나를 따르는 조카의 딸이다. 느닷없는 문자가 왔는데, 그 문자가 이랬다. 거두절미, ‘사랑해’. 이 아이야말로 작가다.

프리다이빙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많은 프리다이버들이 하는 충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내려가세요.”

올여름, 우리는 바닷속으로 그냥 내려가기는커녕 어쩌면 그 바닷물에 발목도 못 적시게 될지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여름이 오기 전에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해변에서의 휴가를 포기하는 대신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정말 읽어볼 만한가요,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도 흉내 내어 말해야겠다.

“그냥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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