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지금은 2020년이잖아요

2020.05.19 06:00 입력 2020.05.21 15:28 수정
박래용 논설위원

1989년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들이 달려간 미래는 26년 뒤인 2015년이다. 영화 속 과학적 상상은 대부분 현실화됐다. 주인공들이 깜짝 놀란 거리의 3D(입체영상) 광고판, 끈이 자동으로 묶이는 운동화 등은 이제 공상이 아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015년 총리 취임 후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장관에 임명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Because it’s 2015)”라고 했다.

[박래용칼럼]통합당, 지금은 2020년이잖아요

지금은 2020년이다. 자유와 문명과 창의가 만개하는 미래가 되리라 기대했던 때보다 5년이 더 지났다. 인터넷 시대와 스마트폰 시대를 지나 AI(인공지능) 시대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실시간으로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세상이 됐다.

미래통합당이 폭망한 이유는 100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게 보수야당은 달라진 세상에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합당은 민심을 읽지 못하는 정치문맹이었다. 그들은 박근혜를 탄핵한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휘두르며 맞섰다. 대한민국에서 국기(國旗)는 흉기가 됐고, 시민들은 그들을 피해 먼 길을 돌아갔다. 시민들은 김진태·민경욱·이언주·이은재 같은 국민밉상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 게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사람들은 누가 누구를 심판하느냐고 킥킥거렸지만, 그들만 몰랐다. 그들은 극우 유튜버가 배설하는 소음을 진짜 민심이라고 생각하고, 불리한 여론조사가 나오면 ‘관제 여론조사’라고 쏘아붙였다. 광화문집회는 지구당에 300명씩 할당된 동원집회였지만 엄청난 시민들이 몰려나왔다며 환호했다. 그들은 집단 최면에 빠진 것 같았다.

정당은 사회의 다양성을 담아야 했지만, 이 당은 꼰대·영남·웰빙세력들이 독과점 권력을 행사했다. 정당이라기보다 패거리, 붕당(朋黨)이었다. 청년과 여성은 반짝 장식용으로 쓰였다가 버려졌다. 집권이 가능하려면 유권자들의 생각의 변화, 생활의 변화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해야 했지만, 이 당은 극렬 지지층의 악다구니만 쫓아다녔다. 그들은 공감능력 제로였다. 여의도연구소에서 쓴소리가 나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대책을 강구하기는커녕 맨 먼저 유출자 색출 작업부터 들어갔다. 풍선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색깔이 아니라 풍선 안에 든 헬륨 때문인데, 그들은 색깔로 나는 줄 여겼다.

이대로라면 2022년 대선도 해보나 마나다. 사람들은 내년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 될 것이라고 한다. 대선 직후인 6월엔 또 하나의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새 대통령 취임 한 달 뒤 열리는 선거다. 어쩌면 보수야당은 4연패에 이어 전무후무한 6연패를 겪을지도 모른다.

지금 통합당의 열세는 177 대 103석이란 의석수뿐만 아니다. 여야 간 격차는 금배지의 질에서 더 크게 벌어져 있다. 보수의 장점은 경험이고 실력이다. 그러나 좋은 인물은 통합당을 기피했다. 태영호가 보수의 미래가 될 수 있는가. 친박이 쫓겨난 자리에는 돌고 돌아 친이가 들어왔다. 이번 지역구 당선자 84명 중 56명(67%)이 영남권이다. 그래서 지금 보수는 수권능력이 있기나 하는 건지 의심받고 있다. 인재는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다. 김종인은 메시아가 아니다. 물 들어온다고 노를 젓는 게 아니라 사막에서 물을 찾아가는 게 정치다. 비바람이 불 때 지혜로운 어부는 그물을 고친다. 통합당은 그물을 고치는 게 아니라 다시 짜야 한다. 정부·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발광(發光)할 수 있어야 한다. 통합당은 아직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바닥을 치고 소멸한 뒤에야 대체정당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게 2024년 총선에서나 가능하리라 본다.

2020년대가 역병(疫病)에서 시작됐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페스트가 중세의 막을 내리고 근대로 가는 길목이 됐듯이,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미래로 향하는 문은 항상 시민들이 열었다. 시민들이 정치를 끌고 왔지, 정치가 시민을 리드한 적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념보다 가치를 중시한다. 같이 모이는 것은 시작을 의미하고, 같이 협력하는 것은 성공을 의미한다고 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시민들은 상생과 공존의 정신을 실천했다. 시민들의 협력은 방역 성공으로 이어졌고, ‘K방역’이란 국제 표준을 만들어냈다. 통합당은 자문해보라. 누구와 같이 모여 있는가, 누구와 협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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