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속내가 잘 보이시나요?

2020.07.04 03:00 입력 2020.07.04 03:01 수정

북 분노는 공포와 수치의 표현
절망감이 보낸 SOS 신호 아닌지

대남전략 분석하며 기싸움보단
북한의 진짜 속마음을 헤야려야

대남 초강경 공세를 이어가던 북한이 최고지도자에 의해 숨고르기에 들어가자, 북한의 전형적인 심리적 길들이기, 즉 ‘가스라이팅(gaslighting)’ 전략이란 주장이 제기되었다. 탈북민 탓, 정부 탓, 아니면 미국 탓을 하면서 길들여지다가 또다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마워하며 더욱더 북한에 잘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때때로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을 듣다 보면, 북한의 지도층은 모두 심리전술의 대가이다. 알고 보면, 심리전술을 구사하는 이들의 내면에는 더 큰 심리적 위기가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북한의 속내가 잘 보이시나요?” 2009년 통일부가 발주한 북한이탈주민 연구 과제를 생전 처음 맡은 내가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해온 한 연구자에게 물었다. 빙그레 웃던 그는 최소한 10년 이상 탈북민 연구를 견딜 수 있다면 그때 보일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갸우뚱하던 내게 그는 북한출신 ‘인간 대상 연구’를 하려면 특별한 뚝심이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보통 연구자들은 조삼모사 말 바꾸는 탈북민에게 금세 실망하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탈북민에게 질려 2~3년 만에 연구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탈북민의 마음, 그 숨겨진 속내를 알기 위해선 속단하는 습관을 버려야 했다. 10년 전 연구자가 속임수와 거짓말이라고 판단한 탈북민의 진술은 그들의 공포심과 연결돼 있었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분노는 그들의 수치심의 발로였음을 알아야 했다. 북한에서의 감시받는 삶을 ‘유리집 공포’라 말했던 탈북민을 만난 적 있다. 공포정치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가족끼리라도 진실을 마음 놓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거짓말은 결코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동원된 정치집회에서 “죽탕쳐 버리자”는 외침도 진짜가 아니다. 거짓구호도 처벌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나는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평화를 선포했던 감격스러운 장면을 기억한다. 비핵화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하려는 북한지도자의 의지마저 느껴졌다.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강국 세우자”는 평화의 구호가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북한은 평화의 상징이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하루아침에 폭파해 버렸다. 허망감에 ‘역시나 북한’이라며 마음이 돌아설 찰나에 나는 다시 10년 전 물었던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젠 10년차 탈북민 연구자답게 북한 지도자의 속내를 느껴보고자 했다. 갑자기 독설가로 돌변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발언을 놓고, 한 외국 언론은 ‘연출된 분노’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연출되었기에 그 분노를 무시해 버리고, 고도의 심리 전략에 속지 말자고 해선 안 된다. 때때로 분노는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애써 방어하기 위한 SOS 시그널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무역의 95%를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 경제상황에서 대북 제재 강화와 코로나19 직격탄은 북한을 밀무역마저도 할 수 없는 최악의 궁지로 내몰리게 했다.

난 코로나19가 북한 사회를 얼마나 공포로 내몰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말 인도적 차원의 타미플루 지원에 남북이 합의했지만, 대북 제재 조치에 저촉된다며 미국과 유엔의 승인이 지연되다가 결국 무산된 일을 상기하리라 믿는다. 이 와중에 한국은 K방역 성과로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외신의 찬사를 받았다. 최근 미국의 초대로 G11 정상회의에 참여할 기회까지 찾아왔다.

북한 지도자의 속내가 느껴졌다. 바닥 끝까지 떨어진 북한의 절망감을 외면하고 한·미가 독자노선을 간다고 여길 수 있다. 진한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강국 세우자”는 능라도 경기장 의기투합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느낄 수 있다. 신뢰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 북한에 쩔쩔매는 정부의 대처가 굴종적이라며 기싸움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이여, “북한의 속내가 잘 안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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