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힘이 세다

2020.08.04 03:00 입력 2020.08.04 08:24 수정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여름이면 이곳이 생각난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땀을 송골송골 흘리면서도, 우산이 소용없을 정도로 쏟아붓는 비에 젖으면서도 기쁘게 그곳을 찾았다. 때로는 바삭 마른, 때로는 습기를 머금어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났다. 천장이 높지 않은 방에서 책을 하나 빼어 들고 창가로 난 책상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서관 이야기다.

이지선 뉴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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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도서관도 변했다. 동네엔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코로나19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요즘에는 예약제로 운영된다. 한 번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과 이용 시간도 제한된다. 열람실에 틀어박히던 추억을 되살릴 수 없었다는 건 아쉽지만 팬데믹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받아주려는 도서관이 왠지 대견했다.

도서관은 그런 힘이 있는 곳이다. 작가 수전 올리언은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를 키운 곳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내게 자율권이 주어졌던 최초의 장소였다. 내가 네댓 살밖에 안 되었을 때에도 원하는 곳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는 각자 발견한 책들을 들고 대출 데스크에서 다시 만났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은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부자가 되어 떠날 것을 약속하는, 방해받을 일이 없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전쟁 속에서도 도서관은 희망의 싹을 틔운다. 시리아의 도시 다라야에서는 내전으로 고립되고 폭탄이 터지는 와중에도 폐허에서 책을 찾아내고 한 권 한 권 모아 지하에 비밀 도서관을 만들었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던 도시 다라야의 도서관 이야기는 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이븐 할둔의 <무깟디마> 등이 인기 대출 도서다. 사람들은 스티븐 코비의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동화구연을 한다. 저널리스트 델핀 미누이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 이들이 구축한 도서관을 ‘종이로 된 요새’라고 했다. 강제 포위된 지 4년 만인 2016년 다라야 주민들은 도시를 강제로 떠나야 했고 도서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곳은 다라야 사람들에겐 “단지 치유의 장이 아니라 휴식의 장”이었고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책을 모은 곳이 도서관이지만, 도서관의 힘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뉴욕 공공도서관 로비는 저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강연을 들으려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도서관에서 저소득계층에 무선인터넷 연결을 위한 공유기를 대여해주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도 녹음한다. 90여개에 달하는 분관에서 어린이들은 수학 수업 등을 받을 수 있고 노인들은 컴퓨터 수업을 듣는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는 이런 도서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으고 연결하고 품어주는 장소로서의 도서관은 사람을 중심에 두어서 가능했다.

수전 올리언은 말한다. “공공도서관이 지닌 공공성은 요즘 세상에서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모두를 환영하는 곳, 그리고 그렇게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면서도 돈을 청구하지 않는 곳을 떠올리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지금 이 시절 도서관이 더 귀한 이유다.

<이지선 뉴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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