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리어왕이 되지 않으려면

2020.08.20 03:00 입력 2020.08.20 03:05 수정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별명은 ‘여의도 차르(군주)’다. 그가 진보, 보수 정당을 넘나들며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전제군주라고 힐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의도 차르는 매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보수 박근혜 선거캠프에 참여하여 승리의 견인차 노릇도 했고, 거꾸로 진보 문재인 진영에 결합하여 승리의 디딤돌 역할도 했다. 그래서 그를 계몽군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어려움에 빠진 정치집단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나오는 전략을 보면 그는 영락없는 전제군주이고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는 설명 능력을 보면 계몽군주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를 전제군주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언제나 어디서나 정당혁신의 전제 조건으로 전권을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정치세력 내부의 복잡한 분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정당이성’의 확보가 변화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치인들의 다양한 특수이해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져야만 혁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를 계몽군주로 부르는 까닭은, 그가 항상 중도화로 정치적 좌표를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 형세를 보는 방법은 이분법이 아니었다. 진보와 보수가 둘로 나누어져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하던 시대는 갔으며,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지지를 바꾸거나 진보와 보수의 어떤 부분적 가치를 선택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적 선호가 큰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주목했다.

여의도 차르는 이런 생각의 틀을 가지고 박근혜 진영에서는 정책비전 설정의 파격성을, 문재인 진영에서는 공천 결정의 의외성을 만들어냈다. 파격과 의외는 여의도 차르가 보이고 싶어 했던 정당혁신의 인증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김종인에게는 전제군주나 계몽군주라는 말보다 ‘리어왕’이 더 어울리는 비유 같다. 자신의 재산을 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정처 없이 방랑의 길을 떠나는 리어왕의 모습이 여의도 차르의 얼굴에 겹쳐진다. 그가 겪은 일 때문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여의도 차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강화를 내걸고 박근혜를 지지했으나 빈손으로 자리를 떠났다. 권력투쟁으로 당이 두 쪽 날 상황을 막으면서 문재인의 승리를 도왔으나 역시 맨몸으로 밀려나와야 했다. 그런 점에서 여의도 차르 김종인은 리어왕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여의도 차르의 대표적 정치실험 두 차례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이번엔 어떨까? 그의 기세는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심상치 않다. 김종인의 등장 이후 통합당 지지도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더니 이제는 눈에 뜨일 정도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모두 화들짝 놀라고 있다. 그의 뜻에 따라 통합당은 광주와 역사적 화해를 모색하고 있으며 경제민주화라는 그의 오래된 애장품은 물론 아직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본소득이라는 신상품까지 꺼내들었다.

그의 그림대로 된다면 통합당은 그럴듯한 보수정당으로 재탄생할 것이고 우리는 전례 없는 근사한 정당 하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예감이 썩 좋은 건 아니다. 순조로운 시작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비극의 조짐이 엿보인다. 우선 그가 새로운 비전을 내놓았지만 이렇다 할 울림이 없다. 울림은커녕 박근혜에게 경제민주화를 줄 때와 같은 의외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제 여의도 차르가 내놓을 상품을 대충 알아버렸다. 그리고 문재인의 회생을 위해 민주화운동의 맏형 이해찬을 공천에서 날려버린 정도의 추상 같은 단호함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방역에 도전하는 어처구니없는 아스팔트 우파세력에 대해 어물어물 눙치는 그의 언급을 들으며 이제 더 이상 여의도 차르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실패한 보수의 늪에서 통합당을 끌고 나오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를 지켜줄 지도자도 눈에 뜨이질 않고, 그의 뒤를 밀어줄 세력도 보이질 않는 것 같다. 통합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여의도 차르 김종인이 성공하여 통합당을 건강하게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통합당이 좋아져야 다른 정당도 튼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처 헌법 개정과 같은 새로운 정치제도와 질서를 만드는 일까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년 4월까지 일을 할 예정이라는 여의도 차르가 이번에는 리어왕 신세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수정당의 체질을 바꾸어 우리 정치의 새로운 틀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려면 낡은 보수의 찌꺼기들을 더 과감하게 도려내야 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전광훈 목사에 대해 우물쭈물하는 김종인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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