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제츠 방한의 기대와 우려

2020.08.21 03:00 입력 2020.08.21 03:01 수정

미국에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격언이 널리 알려져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학자이자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제목(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으로도 유명한 문장이다. 무엇을 얻으면 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유사한 의미지만 세계 각지에는 약간씩 결이 다른 명언들이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중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진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왕은 자신의 사후에도 백성들이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저명한 학자들을 불러 백성들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할 영원한 법칙을 찾아주길 요청했다. 3개월 후 이들은 천하의 지식을 집대성해 3권의 책으로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백성들이 책을 3권이나 읽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을 것 같아 계속 연구하길 명했다. 2개월 후 학자들은 1권으로 압축해 가져왔으나 왕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다시 한 달 후 학자들은 종이 한 장을 왕께 바쳤다. 왕은 백성들이 이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귀중한 지혜를 얻게 되었다며 매우 만족하였다. 종이에는 ‘천하에 공짜 점심은 없다(天下沒有免的午餐)’라는 글귀 한 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나라에서 양제츠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비서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한국에 던지고 있다. 첫 번째는 진일보한 한·중관계의 개선에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내 사드 배치 이후 냉각된 한·중관계의 회복을 추구해왔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었는데 이번 방문에서 이를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다룬다고 한다. 게다가 벌써부터 국내 일각에서는 한한령 해제, 냉각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의 기대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번 방문에서 이런 사안들이 건설적인 합의에 이르게 된다면 한·중관계 개선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는 한국 정부가 그렇게 바라던 시 주석의 방한 등을 저울질하며 2018년 7월 이후 2년여 만에 찾아온 양 정치국원이 한국에 요구할 내용에 대한 우려이다. 1975년 6월 중국 외교부에 들어온 이후 45년이 넘게 외교 분야의 경력을 쌓았고 중국외교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주미대사, 외교부장,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역임했던 그가 최근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역시 나날이 격화되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한국이 미·중 사이의 민감한 현안들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거나 최소한 중립의 ‘모호한’ 태도를 유지해주길 바라는 중국의 입장을 강하게 요구해 올 수도 있다.

사실 최근 중국의 상황은 곤혹스럽다.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경제와 군사·안보에 이어 ‘이념’의 영역으로 전선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현안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문제가 연이어 제기되고,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체제 우위’ 논쟁이 불거져 나왔다. 이어 미국은 지난 5월20일 ‘미국의 대중국 전략적 접근’ 보고서에서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구분하더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에 이어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이후에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까지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면서 ‘이념’의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미국 대 중국’의 구도에서 한층 유리한 ‘자유진영국가 대 중국’의 구도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국가들의 결집력이 높아졌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대표적인 5G 기업인 화웨이 문제에 대해 영국, 프랑스에 이어 독일마저도 미국에 점차 기우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처럼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던 호주도 최근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감수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의 시각에서는 자유진영국가들 중 ‘모호한’ 한국이 약한 고리라고 인식할 수 있다. 한국이 바라는 요구들을 ‘통 크게’ 수용하며 대만·홍콩·신장 문제의 ‘내정’ 인정, 남·동중국해와 화웨이 문제에서 중국 입장 지지, 한국의 ‘3불(不) 입장표명’을 공식문서로 합의하는 것 등을 슬쩍 타진해 볼 수 있다. 정말 하나같이 신중한 고민이 요구되는 사안들이다.

중국과 팽팽한 외교를 펼치는 러시아와 일본에도 ‘공짜’에 관한 속담이 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와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한국이 이번에는 어떤 대응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