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언론의 적대적 공생

2020.09.08 14:59 입력 2020.09.08 20:53 수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2월17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뉴욕타임스와 CNN 등 주요 뉴스 매체들을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 매체는 나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취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임기 내내 주요 언론과 전쟁을 벌였고, 재선 도전에 나서는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그는 2018년 11월 프랑스 방문 당시 미군 참전용사 묘지 방문을 거부하면서 그들을 ‘패배자’ ‘호구’라고 비하했다고 보도한 시사지 ‘애틀랜틱’에 대해 “가짜뉴스와 증오를 토해내는 망해가는 극좌 잡지”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미국에서 대통령이 주류 언론과 충돌하는 것은 드문 현상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한 리처드 닉슨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언론인 명단을 관리했고, 성추문으로 탄핵될 뻔했던 빌 클린턴은 대놓고 언론의 성추문 보도를 통제했다. 버락 오바마는 정보 공개에 인색했고, 언론에 정보를 누설한 취재원을 상대로 고발을 남발했다는 통계가 있다.

언론과 권력자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언론의 전쟁은 유례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격렬했다.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부터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공모 의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기존 미국 대통령과 판이한 그의 언행도 언론의 주요 비판 대상이었다. 언론은 그가 쏟아내는 과장되거나 근거 없는 주장을 ‘팩트체킹’하면서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가만있지 않았다. 정권의 난맥상을 드러내거나 부패 의혹을 폭로하는 언론 보도는 덮어놓고 ‘가짜뉴스’로 몰아세웠다. 800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트위터 계정은 강력한 무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매체와 기자들은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비판과 조롱 세례를 받고, 소송을 당하는 등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기존 뉴스 사이클을 무시하고 낮과 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기삿거리를 쏟아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비판적인 매체들에 기회도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브리핑, 취재진과의 즉석 문답, 많을 경우 하루에 수십건씩 올리는 트윗으로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발언들을 매일 쏟아냈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사건이 생겼을 때 돌출 발언 수위와 빈도는 더욱 높아졌다. 매체들은 쉴 새 없이 속보를 쏟아냈다. 뉴스 생산 주기가 빨라졌고, 독자와 시청자들의 뉴스 소비량이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게 비판적인 매체 사이에 ‘적대적 공생’이라는 기묘한 관계가 형성됐다.

퓨리서치의 지난 1월 발표를 보면 미국 주요 매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5년 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공격 대상인 CNN,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신뢰도 하락이 크게 작용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폭스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큰 변화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권력을 감시하는 주요 언론의 설자리가 좁아진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건강하게 운영할 것인지는 미국인에게 과제로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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