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2020.09.12 03:00

얼마 전, 동료의 지인 가족이 ‘온라인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제사상 앞에 스마트폰을 고정해놓고, 영상으로 소통하며 조상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 풍경을 상상하며 이렇게라도 제사를 지키려는 정성에 놀라고,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어 놀랐다. 뜻하지 않은 ‘팬데믹’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순서가 어지럽게 꼬인 상황이지만, 어느새 적응하게 된 건가 싶기도 했다. 이래저래 올해 경험하는 모든 순간이 예사롭지 않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올해는 추석도 예사롭지 않게 지내게 될 것 같다. 어떤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번 추석 연휴 제발 없애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발 추석 연휴 지역 간 이동 제한해 주세요’ 등의 청원을 올렸다. 방역당국도 “연휴 기간 고향·친지를 방문하지 않는 게 효도의 한 방안”이라며 귀성 자제를 당부했고, 정치권도 “몸이 못 가는 대신 선물로 마음을 보내자”고 제안하는 등 이번 추석은 ‘민족 대이동’ 하려다 ‘코로나 대이동’의 위기를 몰고 오지 않도록 한껏 경계하는 분위기다. 해마다 매진이던 추석 귀성열차 예매율도 감소했단다. 과연, 많은 이의 바람대로 올 추석은 생략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가족끼리 합의하면 되지, 국가가 나서서 금지할 일인가?”라며 청원하고 동의하는 이들의 곤란함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하기 힘든 ‘합의’일 수도 있다. 추석을 앞두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귀성’ 논쟁이 한창이다. “친정에는 안 간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시가에는 차마 말 못하고” “그래도 와야지~” 하는 시부모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속앓이하는 며느리들과 “안 가자니 영 찜찜한” 자녀들의 곤란한 사정이 아우성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파도에 전통과 관습이 함께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민이 아예 국가가 나서서 추석 연휴 기간에 이동 제한을 강제하거나 이번 추석은 생략하자고 정리해주길 바란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이동 제한을 조처해 사회적 혼란을 줄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국가에서 금하는데 “그래도 오라”는 강한 의지를 가진 (시)부모는 드물 테니까.

물론, 이런 주장이 야박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명절과 안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야속하기도 하다. 1년에 한두 번, 온 가족이 모이는 풍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이들이 가질 상실감도 이해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매 순간 절감케 한다. 이전 방식대로 사는 건 오히려 위험하기에 변할 수밖에 없도록 등을 떠민다. 온라인 제사를 드리고, ‘비대면’이 사랑의 실천이며 효도의 방편인 시대를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강제적이긴 하지만, 이런 변화는 그간 우리 사회가 고수한 전통과 관습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고, 만남과 관계를 새롭게 구성할 기회를 주는 유익도 있다. 그러니 이번 추석에는 서로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만나지 않고도 만날 수 있을까? ‘이 시국에’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고 여전히 ‘우리’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통과하면 우리는 ‘새로운 명절’을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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