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당신이 소중하다

2020.09.14 03:00 입력 2020.09.14 03:04 수정

지난 금요일은 자살예방의날이었다. 2017년 경향신문과 공동으로 10년간의 자살 통계를 분석해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한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만큼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몸이 아프고 우울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데이터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감정이 있고 이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올해 상반기에만 자살인구가 코로나19로 사망한 인구보다 약 20배 더 많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코로나 우울’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느끼는 증상이다. 지난달 여론조사회사인 ‘리서치DNA’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사람들이 얼마나 우울한지를 물었다. ‘우울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주로 여성, 20대, 수도권 거주자, 원룸 및 다세대 거주자, 작은 평수의 주택 거주자, 1인 가구, 부모·부부·자녀가 함께 사는 3세대 가족, 월평균 가구소득이 250만원 미만인 경우 등이었다.

이 결과는 2017년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의 사회경제적 특징과 완전히 똑같았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미 현재의 코로나19 상황과 비슷한 수준의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노출돼 있던 것이다. 이들은 생활방역에 지쳐갈수록, 여가의 차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수록 우울감이 더 커지는 특징을 보였다.

자살은 사회과학적 전염병이다. 자살이라는 바이러스는 코로나19처럼 사회경제적 약자, 신체적 약자를 공격한다. 평균으로 보면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바이러스다. 자살인구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큰 폭으로 증가한다. 다만 가을엔 그 폭이 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올가을, 코로나19가 어떤 영향을 줄지 염려스럽다.

다행히도 자살·우울증엔 백신과 치료제가 있다. 이 백신과 치료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인정하며 사랑하면 우리 몸에서 생산된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산된다. 전파력이 강하고, 전파 속도도 빠르다. 가장 큰 특징은 사용할수록 그 양이 줄지 않고,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이 백신과 치료제가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끌어가고 있는 시민의 협력과 연대의 동력이기도 하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된 지 약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운동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면 슬럼프가 찾아온다. 슬럼프는 정신적·심리적 관리가 중요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정신적·심리적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심리방역, 심리면역이 필요할 때다.

멀어지는 것이 있으면 가까워지는 것도 있는 법. 코로나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나를 찾아가기’도 해보면 어떨까. 과거의 나에 대한 원망과 미래의 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고 감사하며 나와의 대화 시간을 늘려보는 거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에게 위로와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자.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오늘도 수고했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