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위한 삶터와 배움터의 재구성

2020.10.05 03:00 입력 2020.10.05 03:03 수정

코로나19로 인한 비등교 사태로 우리는 학교를 다시 보게 되었다. 부모들은 학교가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아이들 역시 학교가 열리면 즐겁게 달려간다. 1990년대와 2000년대만 해도 학생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을 가르친다며 잠을 자거나 교사들에게 반항하면서 ‘교실 붕괴’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물결 이후 비정해진 ‘돌봄 결핍’ 세상을 살아내면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담임선생님이 고맙기만 한 모양이다. 수업 시간은 지루하지만 꿀 같은 휴식 시간이 있고 따뜻한 집밥이 나오는 곳. 엄마의 과로와 불안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곳. 그래서 학교는 좋은 곳이다. 또한 재난 상황을 겪으며 아이들은 어른은 믿을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을 감지한 듯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해서 청소년 판타지 소설에는 부모가 등장하지 않는다. 길을 잃고 허둥대는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해가고 있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나는 동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때로 서로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즐겨 보는 유튜브를 곁에서 훔쳐보면서 그런 변화를 감지한다. 초등학교 2학년 유비(별명)는 최근 ‘나니아 연대기’ 1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영화를 본 후 본격적으로 그 심오한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일기도 연대기 형식으로 쓰면서 판타지 마니아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아기 때부터 학습지를 풀어온 맹자는 학교 숙제를 스스로 하고 수학과 영어 공부를 게임처럼 만든 온라인 프로그램도 매일 30분씩 한다. 대신 나머지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엄마와 협상을 끝냈다. 자기만의 시간에 자전거 묘기, 마술, 곤충 박사와 고등 래퍼와 코미디언 으뜸이와 다운이의 <흔한 남매>를 본다. 자전거 레이서가 될 생각이다.

이 조숙한 ‘딴짓러(딴짓 하는 사람)’들은 사이버상에서 새로운 창의적 생태계를 열어가는 크리에이터·큐레이터 언니·형들과 접속해서 신인류의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스카이캐슬>의 아이들처럼 훈련을 받는 대치동의 아이들이 한편에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스스로를 키우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는, 그리고 교육부는 지금 어떤 아이들을 보고 있는 걸까? 지난 9월7일 ‘학교의 대전환: 미래 학교 운영과 과제’라는 주제를 내건 국회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은 현재 학교가 상위 5%의 학생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성실한 노동자’로 키워봐야 자동화된 기계나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닥쳤으니 그 5%를 위해서라도 95%를 위한 체제 개편이 시급하다고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갈 야성과 내공과 환대의 감각을 키워갈 학습생태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학교의 가치 재발견
상위 5% ‘스카이캐슬’ 반대편엔
유튜브 보며 스스로 크는 아이들
창의성 키우게 돕는 지역 생태계
‘팬데믹 시대의 교육’ 함께 고민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추석 특별방역기간이 끝나면 등교수업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학습 격차 등 우려하는 문제들이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교의 개방은 시급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습은 ‘진도’가 있는 성격의 학습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학습 격차를 걱정하기보다는, 비대면 원칙과 면대면 원칙을 정하면서 팬데믹 시대에 맞는 학교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그리고 그때의 교육은 아이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큰 그림, 작은 학교”라는 모토 아래 교육 혁신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의 매트학교는 주 3일만 등교하고 나머지 이틀은 지역사회 현장에서 배우는 시스템을 세상에 내놓았다. 담임은 열두 명에서 열다섯 명 이내의 아이들을 돌보며 각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을 돕는 길잡이 교사이다. 학교의 길잡이 교사(adviser), 지역사회와 학부모, 그리고 지역 내 전문가 길잡이(멘토), 이 3자가 협력하며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다. 교육부도 이 제도를 참고해서 체험학습,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 등을 도입했다. 거대 학교는 작은 학교로 쪼개고 학교를 둘러싼 동네도서관, 지역아동센터, 생태공원, 교육 분야의 사회적기업, 주민자치회관과 평생학습센터와 키움센터부터 미장원과 공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아이들이 진을 치고 창의적으로 자랄 수 있는 생태계이다. 학교 현장에 고질적으로 남은 양육과 교육의 이분법을 깨고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과 협력해서 지역단위의 자급자족, 자치 교육, 지역 방역의 방향을 세우며 지속될 팬데믹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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