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 북한과 ‘원잠’ 풍각쟁이들

2020.10.20 03:00 입력 2020.10.20 03:02 수정

북한은 핵무기 개발은 물론 잠수함 도입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무려 30년이나 빨랐다. 김씨 왕조는 1963년 소련으로부터 잠수함을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를 연구하고 실전에 응용한 호전적 얼리어답터다. 1996년 9월18일 오전 1시, 북한의 상어급(300t 규모) 잠수함이 정찰요원들을 남한에 침투시킬 목적으로 강원도 강릉으로 들어오다 50m 앞 해상에서 기관 고장으로 좌초됐다. 1998년에는 속초 근해에서 100t급 북한 잠수정이 꽁치잡이 그물에 걸려 우리 해군에 의해 인양되는 코미디 같은 사건도 있었다. 그러고선 10년 전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격침을 당하고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북한이 잠수함을 일찍이 도입한 사연으로 6·25전쟁 때 잠수함이 없어 인천상륙작전을 허용했다는 김일성의 통탄이 있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주체 조선’이 자랑하는 사거리 1만㎞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대규모 발사장이 필요하고 사전에 발사 준비 과정이 노출될 우려가 있지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경우 은밀성 때문에 탐지가 어렵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잠수함에서 핵무기를 쏜다면 문자 그대로 재앙이다. 김정은이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고 주장한 것이 SLBM 완성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15년 5월 처음으로 SLBM 해상 사출시험 장면을 대외적으로 노출시킨 북한이기에 지금은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루었다. 실제로 SLBM 6발가량을 탑재할 수 있는 4000~5000t급 대형 SLBM 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최근 보도를 감안할 때 이제 북한은 SLBM을 탑재한 잠수함을 완성한 단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비행거리 800~1000㎞의 SLBM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에 이어 일곱 번째 SLBM 보유국이 된다. 그러다보니 북한의 SLBM 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 수중 잠항이 가능한 원자력(추진)잠수함(이하 ‘원잠’)을 건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무모하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원잠 설계기능과 장비의 국산화가 이루어져 현재 건조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해도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확보할 수 없다면 건조된 원잠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대안으로 프랑스로부터 아예 저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원잠을 사들여 핵무기 전용(轉用) 의혹을 동시에 불식시키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 경우 동맹의 파기를 각오해야 한다.

둘째, 연구·개발 중인 소형원자로가 심해에서 안전하게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하고도 의미가 있는 연구 데이터가 있는지 과문의 탓으로 들은 적이 없다. 여기에다 2028년까지 쇄빙선용 소형원자로 설계를 목표로 한다고 하면서 5년 내 소형원자로를 탑재한 원잠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모순적 사실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미국 최초 핵잠수함 노틸러스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듯이 건조와 실전 운용은 천양지차다.

마지막으로, 원잠 건조 계획은 2년 전 체결한 9·19 남북군사합의서 1조 1항 ‘무력증강 금지’에 위반되며, 나아가 핵무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원잠을 갖겠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겠다는 종전선언 구상과도 불일치한다. 하기야 자정을 넘긴 오밤중에 신형무기들을 대거 선보인 북한은 군사합의서를 이미 내팽개치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정부는 공기(工期)와 천문학적 비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열정적’ 원잠 풍각쟁이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예산, 기술, 인력, 농축우라늄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하여 원잠 건조 계획이 ‘가성비’가 낮은 프로젝트임을 자인하고 이를 백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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