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할 수 있을까

2021.04.02 03:00 입력 2021.04.02 03:03 수정
이랑 뮤지션·작가

맞은편에서 날아 들어오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몸을 틀어 뛰기 시작하는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어떤 하루를 상상해본다
파괴적인 소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길을 찾아 돌아가려는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어떤 혼잣말을 상상해본다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알까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나밖에 이건 나밖에 이건 나밖에
이건 나밖에 이건 나밖에 이건 나밖에
나밖에

‘이건 나밖에 말할 수 없어요’라는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십 번 반복하는 곡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앞뒤로 붙일 말들이 떠오르지 않아 몇 년 동안 한 문장만으로 부르던 이 곡에 얼마 전 가사를 붙이게 됐다.

이랑 뮤지션·작가

이랑 뮤지션·작가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을 매개로 한 ‘내 나니 여자라,’ 전시가 열리는 수원시립미술관에 갔던 날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인 생방송 비대면 콘서트에 출연할 예정이었고, 그날 전시장에는 공연 스태프와 미술관 관계자들만 드나들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본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관객 없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전시를 구경했다. Ⅰ. 내 나니 여자라, Ⅱ.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 Ⅲ. 나 아니면 또 누가,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된 전시를 보던 중 3부 전시장 한쪽에 크게 쓰인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자세히 알며, 나 아니면 또 누가 이 말을 능히 하리오”라는 글 앞에서 걸음이 딱 멈췄다. 그 순간 오랫동안 한 문장에서 멈춰 있던 곡의 가사를 드디어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중록>의 문장을 되새기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그중 악기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한 여성과, 그를 손가락질하는 두루마기를 걸친 남성들이 그려진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날 공연을 하러 커다란 기타 가방을 들고 걸어온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더 자세히 보게 된 것 같다. 작품 제목은 ‘저것이 무엇인고’였는데, 그림 속에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추켜세운 채 여성을 손가락질하는 남성들과 달리 양금(바이올린) 가방을 든 여성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자기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말들을 어떤 기분으로 듣고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영화과를 다니던 시기, 실기 과제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다닐 일이 많았다. 당시 학교에서 빌려주던 카메라는 6㎜ 방송용 디지털캠코더였다. 카메라 자체는 그렇게 무겁진 않았지만 철제로 된 하드케이스가 꽤 크고 무거웠다. 하루는 종로에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틈틈이 과제로 쓸 풍경을 찍으며 걷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대로변을 걷다 한 남성이 살짝 부딪혔다. 카메라 가방이 내 몸 바깥쪽으로 튀어나와 부딪힌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목적지인 피카디리 극장에 도착해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종로 귀금속상가 지하에 있는 피카디리 극장은 독립영화를 보러 자주 가던 곳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적하고 조용한 극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갑자기 ‘억’ 소리가 나도록 누군가 뒤에서 나를 세게 밀쳤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려 해서 깜짝 놀라 난간을 잡고 뒤를 돌아보니 아까 길에서 나에게 부딪혔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내 얼굴에 대고 “왜 사람을 치고 다녀!”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내려가 버렸다. 아까 가방에 부딪힌 것에 분풀이를 하려고 한참 전부터 뒤를 따라온 모양이었다. 일부러 한적하고 위험한 곳을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잠깐 동안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이후 혼자 카메라 가방을 메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게 두려웠다.

커다란 카메라 가방은 물론이고 악기 케이스를 들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점점 싫어졌다. 딱히 그런 걸 들고 다니지 않아도 혼자 다닐 때 무섭다고 느끼는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동네 산책을 하던 중 이유도 없이 모텔에 같이 가자며 집요하게 따라붙는 남성을 만나기도 했다. 가까운 관계의 남성과 둘만 있을 때 신체 폭력을 경험한 일은 수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다. 언젠가부터 중요한 일이 아니면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게 됐고, 밖에 나갈 땐 되도록 택시로 이동했다. 공연장, 전시장, 파티 심지어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 말도, 행동도 계속 좁은 반경 안으로 사그라드는 것 같아 스스로가 싫어질 때도 있지만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상황을 다시 혼자 마주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나는 언제쯤 그 감정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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