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상속세, 어그로

2021.05.06 03:00 입력 2021.05.06 15:54 수정

‘어그로 끌다’라는 말이 있다. 온라인상에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최근 공론의 장에서 가장 어그로를 끄는 것은 삼성과 상속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총희 회계사

이총희 회계사

이건희 회장의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와 기부의 규모 등을 생각할 때 이 회장에 대한 미담 기사는 나올 수 있다. 그 역시 한 회사의 경영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이웃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사후에 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미담을 상속세에 대한 비난으로 바꾸는 언론과 경제단체다. 망자의 뜻은 누구도 알 수 없는데 언론과 재계는 마치 이 회장이 상속세를 줄이고 싶어 기부를 한 것처럼, 현재의 상속세법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기부와 상속세 납부에 맞추어 상속세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왜 하필 미담이 될 내용에 재를 뿌리는지 모르겠다. 정치나 경제나 문제는 망자의 뜻을 왜곡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사람들이다.

경총은 뜬금없이 지난 3일 ‘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상속세제 개선방안’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눈 감고도 맞힐 수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우리의 상속세율이 높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삼성의 상속세 납부가 발표되는 날,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천명했다. 트럼프의 법인세 인하에는 ‘국제비교’를 하면서 법인세가 높다고 아우성이었던 그들은 왜 지금은 한마디도 없을까. 세법은 전체적인 틀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상속세를 국제비교하고 법인세를 국제비교하는 식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모든 세법을 국제비교로 해결한다면 합성의 오류로 괴상한 조세제도가 탄생할 뿐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불필요한 훈수도 그렇다. 반도체 전쟁이 한창이니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하자는 이야기는 애교다. 이 부회장을 사면하여 백신과 빅딜을 하자는 주장도 많다. 삼성전자는 국영도, 개인기업도 아닌 주식회사다. 주식회사 제도는 개인과 법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주식회사를 가지고 빅딜을 하라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기업이 상속세를 내지 않음에도 기업의 상속세 문제로 곡해하는 것, 삼성전자를 놓고 빅딜을 외치는 것 모두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내야 할 세금은 내고, 받을 처벌은 받되 그 이상의 무리한 요구는 막아주는 것이 올바른 시장의 모습이다.

혹자는 대통령의 요구를 어떻게 거절하겠느냐며 이 부회장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그가 처벌을 받은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리한 요구를 들어줬기 때문이다. 사면을 대가로 회사의 이익을 희생한다면 이 또한 범죄가 된다. 백신을 핑계로 개인을 살리려는 것인지, 백신이 급해서 회사를 망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양쪽 모두 삼성에는 독이 든 성배다. 이 부회장을 살리자며 그를 더 위험에 빠트리려 하고, 북한의 세습을 비판하며 자본주의에서 세습을 이루려는 모순은 지독한 어그로다. 삼성을 망치려는 어그로는 이제 그만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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