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누구의 피노키오인가

2021.06.21 03:00 입력 2021.06.21 03:03 수정

“국민의당은 이런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내로남불·포퓰리즘·교만과 독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만난 자리의 배경에 써진 문구다. 국민의당 회의실 벽에 장식된 슬로건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두 정당의 대표가 만나는 자리에 ‘포퓰리즘’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두 정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합당을 논의하는 중이기도 하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개념은 긍정적 성격과 부정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부정적 측면은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하며 카리스마적 권위주의 정치를 추구하는 대중추수주의를 말한다. 정확히는 포퓰러리즘(popularism)이라고 해야 한다. 반면 긍정적 측면은 19세기 말 러시아 브나로드 운동과 미국 인민당 운동 혹은 최근 남부 유럽의 좌파 포스트포퓰리즘처럼 권위주의적 엘리트 정치에 대항해 인민의 권리를 회복하려는 운동이나 이념을 말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포퓰리즘의 핵심은 사회를 엘리트와 인민의 대립 구도로 보고 엘리트에 대항해 인민(국민)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이 이 의미를 모르고 썼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묘한 역설이 담겨 있다. 이때 역설은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음을 뜻한다. 포퓰리즘의 반대 개념은 엘리트주의다. 포퓰러리즘이 아니라 포퓰리즘 전체를 배격한다면 국민을 위한 정치를 떠나 엘리트 정치에 복무하겠다는 의미가 될 터이다.

민주주의 질서에서 정치인은 자유의지를 가진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라고 할 수 있다. 미성년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국민에 의해 탄생했지만 독자적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존재라는 얘기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벌을 받는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권력을 가진 자리에서 거짓말을 할 때는 코가 길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콧대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권력형 거짓말은 콧대를 높여 결국 앞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이준석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공감한다’던 사흘 전 말을 뒤집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가 누구의 피노키오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피노키오가 가난하고 힘없는 아버지를 버리고 돈 많고 힘 있는 악당들의 꼭두각시가 되는 길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이제 권력의 자리에 앉았으니 단순히 코가 길어지기만 하지 않고 콧대까지 높아질 수 있다.

문학평론가 조효원은 자유주의와 자유의지를 설명하는 글에서 “시대착오가 시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유주의 질서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이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착오일 것이라는 얘기로 읽힌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시대착오는 기성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코가 길어지고 높아져 언젠가는 고꾸라지겠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가 헬조선으로 불린 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30대의 젊은이가 제1야당의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은 낡은 시대가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촛불 혁명 이후 민주당에 걸었던 기대가 무너진 징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시대는 오지 않았다.

체제 이념을 떠나 판단할 때, 젊은 세대는 분명히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이다. 일상의 권위주의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경제 발전의 권위도 민주화의 권위도 이제는 존중받기 어렵다.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룩한 세대가 그 권위를 이용해 기득권을 주장하는 ‘권위주의’로 변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넘어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국민의힘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젊은 정치인에게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국민의 피노키오가 아니라 특권층과 기성세대의 꼭두각시가 된다면, 그것이 주는 실망감은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다. 무엇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누구에 대한 기대가 부각된 것일 뿐이다. 줄곧 새로운 정치를 주장해온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에도 이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정치적 수사를 위해 동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포퓰러리즘이다. 무엇에 대한 반성과 고민 없이 젊은 정치인을 내세워 이준석 효과를 차단하려는 민주당의 대응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정치와 새로운 정치를 추구한다면, 자유의지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를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새롭고 젊은 정치가 실현될 때 새로운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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