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먼저 줄 용기

2021.06.22 03:00 입력 2021.06.22 03:02 수정

집집마다 구걸하며 걷다가 황금마차를 만났다. 이제 그 저주스러운 세월도 끝났구나 하는 희망을 안고 쏟아질 보배를 기대하며 서 있었다.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너는 내게 무엇을 주려 하는가?”라며 손을 내밀었다. 나에게 오히려 무엇을 달라 하니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걸해 얻은 밀 한 톨을 봇짐 속에서 꺼내 건넸다. 날이 저물어 봇짐을 쏟아놓고 보니 작은 금구슬 한 알이 보여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모두 드리지 못하였음이 몹시도 안타까웠다.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년 우리는 평화라는 황금마차를 만났다. 평창 올림픽이라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있었다지만 시작은 2017년 12월19일 강릉으로 향하는 KTX 안에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 NBC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올림픽·패럴림픽 기간과 겹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남측은 2018년 평창 올림픽·패럴림픽을 계기로 북을 포용하고자 했고, 북은 2018년 1월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패럴림픽 참가를 밝히며 남북대화를 제안했다. 그렇게 남측의 용기에 북측이 신뢰로 화답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보여준 용기와 북이 보내준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은 손을 잡고 그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반도 평화마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남북은 2018년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열었고,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했다. 2019년 6월에는 남·북·미 정상회동이 판문점에서 열리기도 했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부터 9월 평양 정상회담을 지나 10개월여 동안 남북 간 합의 이행의 노력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이 가속화되고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움트기 시작했다. 9월 평양에서의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남북의 주민들 삶에 평화가 일상화된,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한반도를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평양시민들 앞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이야기했다.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꿈꾸었고, 그리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행복했던 평화의 시간이 안정적 평화로까지는 진화하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다. 어쩌면 뒷걸음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관계에 위기가 엄습했다. 판문점선언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연기 속에 사라졌다. 북이 발간한 기념 사진첩 속에서도 2018년 남북이 함께한 평화의 기억은 지워졌다. 북이 미국과는 대화와 대결 모두 준비한다면서도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우리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고, 우리 앞에 대단히 새로운 도전과 장애물이 조성될 것입니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환영 만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 말이다. 엄혹한 미·중관계 속의 한반도 상황을 볼 때 그날 우리가 탄 것이 정말 안정적인 황금마차라고 생각했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미대화만 바라보고 대북제재 탓만을 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가 적대적으로 생각될 때가 있다. 과거에 크게 싸웠거나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고, 심한 경쟁을 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주위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면 자신의 삶 또한 편안하지 못하다. 만약 내가 그 누군가보다 덩치가 크고 강하다면 양보의 선택권은 나 자신에게 있지 합리적 생존 우려를 갖고 사는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정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찰스 쿱찬(Charles Kupchan)은 저서 <적은 어떻게 친구가 되는가(How Enemies Become Friends)>(2010)에서 안정된 평화를 위해 상대와 화해하는 첫 번째 단계로 일방적 수용(unilateral accommodation)을 강조한다. 전략적으로 양보하라는 것이다. 평화는 고립이 아니라 대화와 상호수용을 통해서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위험 속에서 시작되기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가 그 용기를 수용할지부터 걱정하고 주저해서는 안 된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명시되었다고 평화가 저절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저 멀리 유럽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지를 얻어낸다고 북이 생각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게 얻은 평화의 밀알을 한반도 땅에 심어야 평화가 싹을 틔울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돌을 옮기려 할 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면 주변의 돌부터 움직이라”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의 해법은 항상 우리 손에 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돌을 옮기려면 우선 내 주변의 돌부터 움직여야 한다. 왜 우리는 우리 주변의 돌을 먼저 옮기고 남북관계에 우선해 모든 것을 줄 용기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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