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의 복잡성

2021.07.08 03:00 입력 2021.07.08 03:03 수정

“천재일우의 기회다.” 2017년 5월 대선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한 말이다. 당시 진보의 상징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경기도 교육감 시절 혁신학교 바람을 일으켰던 김상곤 교육부 장관,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서 새로운 진보개혁의 삼두마차가 완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런 분위기는 그해 출범한 국가교육회의로까지 이어지면서 나름 교육변화의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졌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하지만 기대와 달리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김상곤 장관은 우왕좌왕 시간만 보내다 물러났고, 뒤이은 유은혜 장관은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는 배경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관리에만 급급했다. 전국의 진보교육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국가교육회의도 세간에 “숙의만 있고 결론이 없는” 기구로 전락하였다. 왜 이런 무력감의 흐름이 지속되었을까? 몇 가지 짚어볼 만한 부분이 있다.

우선 ‘올드보이’들의 소환이다.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해내지 못했고, 측근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올드보이의 소환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교육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면서도 교육문제의 실타래를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재한 자리에 당장 눈에 띄는 현안들이 점령해 주인 노릇을 해버렸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 초기부터 언론과 검찰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귀중한 사회개혁의 모멘텀을 놓쳤던 것처럼, 이들은 처음부터 자사고, 대입정시, 혁신학교 등의 부분 전투에만 몰입하였고, 그 때문에 미래국가교육체계를 설계하고 마스터 플랜을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시·도교육청이 해야 할 일과 국가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이 서로 혼재되었고, 국가정책 가운데 교육정책의 상대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관료들은 관성대로 움직였고, 교육부는 마치 브레인 없이 돌아가는 자율신경조직 같았다.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일부 과장된 약속들, 생각만 앞서고 방책은 불비한 공약들이 걸러짐 없이 대통령 공약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예컨대 ‘국가가 교육을 완전히 책임지는 시대’를 열겠다거나, ‘무너진 교육사다리를 다시 세우겠다’는 공약은 비록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약속은 아니다. 고교 무상교육이나 유치원 회계 투명화, 혹은 자사고 폐지 등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공약사항에 나왔던 ‘교육적폐’라는 개념은 각종 집단들을 대치하게 만들었다. 초기에는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시작하더니 이후에는 자사고, 특목고 등이 더해졌고, 2018년 말에는 9대 생활적폐에 ‘학사 및 유치원 비리’를 포함시켰다. 적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피아를 구분하는 전선이 생긴다. 합리적이고 절차적 해결 가능성은 사라지고 대립의 골이 깊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 문제는 정치적 쟁점으로만 인식되기 시작했다. 숙려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학입시에서 정시냐 수시냐의 쟁론도 결국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위원회’에 위임하면서 문제를 더 키웠다. 진보정부가 교육문제를 너무 만만한 것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까?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하나씩 무찔러 나가면 결국 해결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천재일우의 기회다. 밀어붙이면 해결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교육문제의 뿌리는 깊고도 넓을뿐더러 몹시도 엉켜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부분 속에 문제의 해답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문제의 해결은 전체 지형도를 잘 그리는 데에서 출발한다. 장기간의 마스터플랜이 없다면 세부 정책들도 길을 잃는다. 현 정부가 가진 한계는 그 지도가 당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할뿐더러 방향과 성격에 있어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제, 조희연 교육감은 ‘2025 교육체제’라는 서울시 교육발전 마스터 플랜을 발표했다. 나름 좋은 플랜이었지만 그 아이디어를 심층분석하는 언론사는 없었다. 눈에 띄는 교육정책들을 단순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기사들은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그마저도 언론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 대신 ‘조희연 3선 도전 의지’, 혹은 ‘조희연 내로남불 반성’ 등의 제목들이 지면을 장식했다. 교육문제를 제대로 다루라는 요구는 클릭 전쟁에 허덕이는 언론에 너무 과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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