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미소 짓는 EU와 러시아

2021.07.09 03:00 입력 2021.08.05 15:26 수정

근년 들어 미·중 전략적 경쟁에 대한 현황과 전망, 그리고 한국의 대응 방안 찾기는 관련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 주요 화두가 되어왔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는 부동산 문제를 필두로 코로나19 방역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정책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하지만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걸린 첨단산업의 국제표준과 규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안착, 나아가 역내 군사·안보적 지각 변화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칠 미·중의 경쟁도 결코 작은 주제는 아니기에 이에 대한 논의 또한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의 시야가 미국과 중국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쟁의 당사국들이자 세계 1, 2위의 강대국이니 이들의 정책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많은 함의를 준다.

현재의 미·중 전략적 경쟁은 본질적으로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는 속칭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패권전쟁의 단계라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예방적 경쟁’의 단계로 생각된다. 미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전후 질서를 구축했지만 어느 순간 미국의 규범과 질서 내에서 중국이 가장 큰 ‘상대적 이익’을 가져가며 미국과의 국력 격차를 줄여왔다. 미국은 이를 고쳐 다시금 미국이 가장 큰 이익을 가져가고, 중국의 이익을 감소시키려 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미국이 혼자서도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수립하고 중국을 순응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나토,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까지도 미국의 이익을 요구했다. 중국은 강하게 저항했고, 동맹국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의 리더십에 실망하는 한편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인식하고 임기 후반 들어서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실수는 설사 미국일지라도 현 상황에서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며, 중국으로부터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들 국가에 미국이 세우려는 규범과 질서 내에서 이익과 지분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셈이었다.

EU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EU의 주요 국가들은 중국을 활용(?)하며 미국으로부터 디지털세, 탄소국경세 등을 얻어냈다. 또한 중국 내에서 이익을 내는 대부분의 EU 기업들은 본국으로 철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미국도 중국 내에서 장사가 잘되어 ‘상대적 이익’이 나는 애플, 테슬라, 코닝사 등을 그대로 두고 있다.

EU의 이러한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6월 G7, 나토, 미·러 정상회의를 연이어 개최하며 유럽을 순방하자, 시진핑 주석은 지난 5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및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화상회담을 하며 협력 확대 의지를 밝혔다. EU는 미·중 모두로부터 구애를 받으며 자신들의 ‘실질적인 이익’을 양국 모두로부터 담보받는 한편 미·중 간 규범과 질서의 경쟁에서 무게추의 역할을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다른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에 대응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러시아를 붙잡아 두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러 정상회담 당시 중국의 관방언론들은 미국이 러시아를 중국과 떼어놓으려 하지만 헛수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타스통신이 지난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개정된 국가안보전략을 승인했다고 보도하자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러시아의 신국가안보전략은 중·러를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전략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반면 타스통신은 미국이 군축 협상의 의무를 포기했다고 비판했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EU의 주요국들은 미국과 공유하는 가치와 동맹의 중요성을,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의 필요성을 경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중 사이에서 국익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시키려는 외교적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에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제 한국은 EU와 러시아의 행보 및 그들이 미·중에 제시하는 규범 및 국익을 분석하여 한국과 이익의 공유 및 충돌되는 현안에서는 각각 협력과 함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를 위해 한국은 먼저 우리의 가치와 ‘실질적인’ 국익이 조속히 정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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